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유럽ㆍ귀족 쏙 빼고… ‘강남’ ‘김부장’ 노래하는 한국 오페라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유럽ㆍ귀족 쏙 빼고… ‘강남’ ‘김부장’ 노래하는 한국 오페라

입력
2019.12.19 04:40
22면
0 0
내년 2월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공연될 창작 오페라 '김부장의 죽음' 속 한 장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내년 2월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공연될 창작 오페라 '김부장의 죽음' 속 한 장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아니 그럴 리 없어. 이 모든 게 내 탓이라고? 천만에! 난 최선을 다했어. 도대체 뭐가 잘못이란 말이야!”

1965년생 김영호가 좌절하며 노래한다. 남들처럼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하고 결혼해 앞만 보고 살아온 그. 겨우겨우 부장으로 승진해 서울 한강변에 아파트를 장만한 어느 날, 커튼을 달다가 방바닥에 떨어져 옆구리를 다친다. 사소한 부상이었는데 알 수 없는 병으로 커져 점차 죽어간다. “상무 되고 싶다더니, 그럼 박 차장이 부장 되나?”(회사 동료) “산 사람은 살아야죠.”(아내) 자신의 죽음을 대하는 주변 사람들 반응이란 게 무심하기 그지 없다.

이는 뮤지컬도 연극도 아닌, 오페라의 줄거리다. 한국 작가, 연출, 배우가 함께 만든 ‘김부장의 죽음’이다. 내년 2월 서울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 무대에 오를 작품이다. 이 작품은 지금부터 벌써 공연계의 화제다. 오페라라고 하면 흔히 떠올리는 유럽, 고전, 왕족, 귀족 같은 키워드과 완전히 무관한 작품이어서다.

지난 9월 공연된 국립오페라단의 창작 오페라 '1945'. 국립오페라단 제공
지난 9월 공연된 국립오페라단의 창작 오페라 '1945'. 국립오페라단 제공

국내 오페라계에 새 바람이 불고 있다. 한국 관객들에게 고급스럽긴 한데 잘 모르겠고 어렵다는 인식을 심어줬던 오페라를 친숙하게 바꿔보자는 공감대가 커져서다. 국립뿐만 아니라 민간 오페라단체들도 저마다 다양한 창작 오페라를 선보이며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 흐름은 최근의 일이다. 지난 9월 국립오페라단이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 올린 ‘1945’가 대표적. 해방 직후 만주에 살던 조선인들이 고국으로 돌아오려 고군분투하는 내용이다. 오페라가 한국 역사를 다뤘다는 점에서 독특했다. 동요 ‘엄마야 누나야’와 당대 창가, 군가 멜로디를 재가공, 자칫 창작 오페라여서 관객들에게 낯설 수 있다는 약점 또한 뛰어넘었다는 평을 받았다. 지난 7월 구둣방에 모여 사는 가족의 부조리를 그린 서울시오페라단의 ‘텃밭킬러’ 역시 독특한 소재와 쫀쫀한 곡 구성으로 많은 관객을 모았다.

내년 2월 서울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공연될 창작 오페라 '까마귀'의 한 장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내년 2월 서울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공연될 창작 오페라 '까마귀'의 한 장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김부장의 죽음’과 함께 주목받는 오페라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연예술창작산실에 선정된 ‘까마귀’(내년 2월 개막)다. 1998년 외환위기 뒤 동반 자살하려던 부부가 막내만큼은 살려보자며 놀이공원에 남겨두고 와서는 힘겹게 살아간다는 내용이다.

국립오페라단이 내년 3월 무대에 올리는 ‘빨간 바지’도 1970~1980년대 강남 부동산 개발과 얽힌 계층의 이야기를 그린다. 출소해 고급 술집 주방에서 일하는 목수정을 중심으로 빈부격차 등 사회 문제들을 풍자한다. 두 작품 모두 한국 관객이라면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그야 말로 ‘한국적인’ 내용이다.

국립오페라단의 창작 오페라 '1945'에 등장하는 기차 장면. 국립오페라단 제공
국립오페라단의 창작 오페라 '1945'에 등장하는 기차 장면. 국립오페라단 제공

연극계 유명 극작가와 연출의 합류도 창작 오페라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는 데 한 몫 했다. ‘1945’는 최근 연극계 러브 콜이 가장 많은 고선웅 연출가에다 극작가 배삼식이 대본 뿐만 아니라 작사에도 참여했다. ‘까마귀’에는 극작가 고연옥이, ‘빨간바지’와 ‘텃밭킬러’에는 극작가 윤미현이 참여해 그간 오페라가 시도해보지 못한 섬세한 무대 문법을 작품에다 심고 있다.

황지원 오페라평론가는 “오페라가 국내에 수용될 초기에 외형적인 것만 강조되다 보니 주제가 한정된 경우가 많았고, 창작 오페라라 하더라도 유럽의 소재를 대거 가져왔었다”며 “한국 관객 그리고 동시대와 호흡하려는 최근 창작 오페라의 흐름은 주목할 만 하다”고 분석했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