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달곰 복원 사업, 감성 버린 뒤에야 성공
경제ᆞ사회 전반에 감성 과잉 정책 쏟아져
이분법 대신 이성적ㆍ절충적 사고 갖춰야
오락가락 교육 정책, 반시장적 부동산 정책, 고령ㆍ임시직만 키운 일자리 정책 등 말만 요란한 이 정부의 정책 중 좋은 평가를 받는 건 드물다. 그런데 성공한 사업이 있다. 반달가슴곰 복원 사업이다. 2004년 시작된 이 사업을 제대로 이어받아 최근에는 최초 방생지인 지리산에서 직선거리로 60㎞나 떨어진 덕유산에서 개체가 확인됐다.
재미있는 건 백두대간을 따라 퍼져 나가는 곰들의 이름이다. ‘곰돌이’ ‘반돌이’ 등 친근한 이름을 붙였으면 좋으련만 그렇지 않다. KM-53, KM31-10-10 같은 개체 번호만 있다. KM은 한국(Korea)에서 태어난 수컷(Male)이라는 뜻이고, 숫자 ‘31-10-10’은 각각 방사 순서, 출생연도, 방사 연도를 의미한다. 종 복원을 위해 북한과 러시아에서 들여온 개체에는 북한(North Korea)산 암컷(Female)이란 의미의 NF, 러시아(Russia)산 수컷(Male)에는 RM이 붙었다.
곰에게 이름이 없었던 건 아니다. 2004년 러시아에서 들여온 야생곰 6마리에게는 한국 이름을 붙였다. 지리산과 관련 있는 이름을 모아 천왕ㆍ제석ㆍ달궁ㆍ칠선ㆍ화엄ㆍ만복이었다. 그럴듯한 이름으로 국민 관심을 끌려던 것인데 부작용이 더 컸다. 친근한 이름이 붙은 야생 반달곰을 애완동물 취급하는 분위기가 나타났다. 야생 적응에 실패해 곰이 폐사하자 “장례를 치러줘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다. 탐방객들이 먹이를 주는 바람에 곰이 야생 적응에 실패하는 경우도 빈발했다. 2007년부터 아예 이름을 없애고 관리번호만으로 반달곰을 부르게 됐다.
이해관계가 얽힌 정부 정책에 일정한 방향으로 감정을 이입시키면 초기 관심을 끄는 데는 도움이 될지언정, 성공 확률은 낮다. 굳이 예를 들면, 안타깝게도 ‘민식이법’도 그런 부류다. 민식군과 부모님의 안타까운 사연 때문에 첨예한 여야 대치의 필리버스터 국면에서도 신속하게 통과된 민생입법이지만, 불과 며칠 만에 형평성 논란이 일고 있다.
교통사고 전문 한문철 변호사의 설명을 적극 반영하면 이런 가상 사례도 가능하다. 심장병을 앓는 ‘만식이’의 공무원 아빠 A씨. 어느 날 갑자기 아들이 쓰러졌고, 구급차를 기다릴 여유조차 없어 만식이를 싣고 5분 거리의 종합병원 응급실로 차를 몰았다. 그러나 집 앞 학교 골목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어린이를 치어 숨지게 했다. 이 경우 A씨는 과실 유무에 상관없이 무조건 해직된다. 공무원은 벌금형보다 높은 형을 받으면 무조건 옷을 벗어야 하는데, 민식이법은 사망사고에서 벌금형을 배제하기 때문이다. 만식이가 신문, 유튜브, TV, 청와대 게시판에 아빠의 억울한 상황을 호소하면 국회의원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만식이법’이라는 이름으로 도로교통법을 또 바꿔야 하나.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 의사 결정은 감성 과잉이 됐다. 복잡한 현안을 다수의 감성으로 재단하고, 해결책도 감성에 호소한다. 세월호 이후 해난 사고 때마다 100% 완전 구조라는 감성적 주장이 난무한다. 부동산만은 반드시 잡겠다고 거시경제 여건도 무시한 감성적 집값 안정대책이 쏟아진다. 외교안보에서도 비핵화ㆍ반일ㆍ통일이라는 감성 구호에 젖어 전략적 이익이 크게 손상되고 있다는 평가다.
국민은 정권을 욕하고 야당을 탓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스스로의 감성적 정치 행태 때문이다. 앞으로도 국민이 깨어나지 못하면 득을 보는 건 선동 세력이다. 아돌프 히틀러는 ‘나의 투쟁’에서 독일 국민의 눈을 가린 선전술을 이렇게 적고 있다. ‘민중의 압도적 다수는 냉정한 숙고보다 감정적 느낌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 이 감정은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며 폐쇄적이다. 긍정 아니면 부정이며, 사랑 아니면 미움이고, 정의 아니면 불의이며, 참 아니면 거짓이다. 반은 그렇고 반은 그렇지 않다는 결코 없다.’
정치 세력은 ‘우리가 100% 맞다’고 선동한다. 그러나 세상에 완전히 옳고, 완전히 나쁜 건 거의 없다. 반달가슴곰 ‘KM-53’호는 유권자들에게 감정이탈(感情離脫)의 중요성을 알려준다.
조철환ㆍ뉴스3부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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