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적당히 때를 묻혀 가며 사회 생활을 하다 보면 상식이라는 걸 배우게 된다. 그렇게 배운 상식은 지구가 매일 자전을 하면서 태양을 1년에 한 바퀴씩 돈다거나, 그래서 오늘 하루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는 식의 교과서 지식과는 사뭇 다르다. 누구나 알고 있고 나 역시 알아야 하는 것인 동시에 주변 사람들과 무난하게 지낼 수 있는 일종의 지혜 같은 것이기도 하다. 길을 걷다가 다른 이의 어깨와 부딪히게 되면 곧바로 미안하다고 하거나 고개를 한 번 숙여줘야 다툼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뭐 그런 거다.
난데 없이 상식 얘기를 하는 건 얼마 전 유튜브에서 ‘국회의원 세비를 30% 삭감하자’던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국회의원 세비를 한 달 월급으로 나누면 1,265만원이고 이는 한 달 월급이 174만원인 최저임금의 7.25배 정도”라는 설명과 함께“소득격차를 줄이기 위해 국회의원부터 솔선수범한다는 의미에서 세비를 최저임금과 연동해 5배 이내로 정하자”는 주장이었다. 그걸 보면서 몇 가지 상식과 양심을 얘기하고 싶어졌던 것이다.
기자인 나도 직장인 중 한 명이니, ‘봉급 생활자의 양심과 상식’을 매일 생각하게 된다. 남이 주는 월급은 결코 ‘공돈’이 아니라는 사실, 그러니까 ‘받는 돈만큼은 일을 해야 한다’는 회사의 눈치를 인정해야 한다는 서글픈 일상 말이다. 그건 내가 인정하든 말든 직장인이 가져야 할 상식이자 요구되는 양심이기도 하다. 실제 주변을 둘러보면 “그 돈 받으면서 이 정도는 해야 하는 것 아냐”는 공격, “받는 만큼 충분히 일하고 있거든. 더 일하면 네가 수당 줄 거야”라는 반격이 무시로 벌어지고 있다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내년 국회의원 세비는 심 대표의 말처럼 1인당 1억5,180만원 가량으로 알려져 있다. 기본급에 해당하는 수당이 1억476만원이고, 입법활동비 3,768만원, 특별활동비 936만원이 그들이 받는 연봉이다. 한국고용정보원이 2017년 발표한 직업 연봉 실태를 보면 기업 임원(1억3,000만원)보다, 대학총장이나 학장(1억1,000만원) 보다 국회의원들이 더 많은 돈을 받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세금 혜택도 있다. 연간 4,722만원 활동비에 따로 세금이 붙지 않아 일반 직장인들처럼‘한 푼이라도 더 환급 더 받겠다’며 연말정산 서류에 공을 들이지 않아도 된다. 사무실 운영비, 차량유지비, 유류비용 등 경비는 관서 운용 소요 경비로 집행이 돼 월급 통장을 축낼 필요도 없다.
지난달 말 전국 17만 상공인을 대표하는 경제단체인 대한상공회의소 박용만 회장이 국회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개인정보보호법, 정보통신망법, 신용정보법 등 이른바 ‘데이터3법’ 개정안 처리가 무산될 위기에 처한 것에 대한 분노였다. “국회가 국민에게 한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는 그의 화 섞인 목소리는 왠지‘의원님들 제발 할 일 좀 합시다’라는 말로 들렸다.
18일 현재도 이들 법안을 포함해 각종 규제 개혁 관련 법안은 무심하게 내팽개쳐 있다. 국회는 역시나 멈춰 있고, 제1야당의 대표는 국회에 난입한 시위자들과 함께 거리에 나앉아 있을 뿐이다. 오직 내년 총선에만 신경을 집중하고 있는 국회의 2019년은 그렇게 또 마무리가 될 분위기다.
내년에는 심 대표 제안이 반드시 현실이 됐으면 한다. 다만 심 대표나 정의당 역시 조금은 더 솔직하게 말해줬으면 좋겠다. 세비를 삭감해야 하는 이유가 ‘소득격차 해소를 위한 솔선수범’이 아니라 ‘일하는 것에 비해 너무 많은 돈을 받고 있다는, 상식과 양심 때문’이라고 말이다. 그들의 연봉을 일부 부담하고 있는 납세자로서, 그들을 투표로 고용하는 유권자로서, 나는 이렇게 말할 자격이 있다.
남상욱 산업부 차장 thot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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