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지평선] 어느 용의자의 자백

입력
2019.12.17 18:00
수정
2019.12.17 18:31
30면
0 0
연쇄살인범 이춘재의 고등학교 졸업사진. 한국일보 자료사진
연쇄살인범 이춘재의 고등학교 졸업사진. 한국일보 자료사진

영화 ‘양들의 침묵’(1991)에는 매력적인 악인이 등장한다. 한니발 렉터(앤서니 홉킨스)는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심리 분석의 대가이면서 동시에 살인마다. 그의 도움 덕분에 미연방수사국(FBI) 수습 요원 클라리스(조디 포스터)는 연쇄살인마를 검거한다. 사이코패스 범죄자로 수감까지 된 살인마가 수사원에게 조언을 해 악랄한 범인을 잡게 해 주는 과정이 흥미롭다. 렉터가 대중의 눈길을 워낙 많이 끌다 보니 아예 그를 주인공으로 한 TV드라마 ‘한니발’이 시즌3까지 만들어졌다.

□ 한니발 렉터의 모델이 된 인물은 헨리 리 루커스라는 미국 연쇄살인범이다. 루커스는 2명을 살해한 혐의로 1983년 검거됐는데, 이후 그의 입에서 놀라운 말들이 튀어나왔다. 수사관이 몇몇 미제 살인사건에 대해 루커스에게 캐묻자 그는 자신의 소행이라고 자백했다. 미국 각지에서 수사 단초를 찾지 못한 사건에 대한 문의가 이어졌고, 루커스는 순순히 인정했다. 루커스는 300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희대의 살인마로 순식간에 둔갑했다. 미국 대중은 호기심 어린 공포에 떨었다. 루커스는 그렇게 악마가 됐다.

□ 그러나 루커스의 살인 행각에는 의문점이 적지 않았다. 그를 밀착 취재하던 한 언론인이 의문을 품고 루커스의 과거 행적을 샅샅이 뒤졌다. 루커스가 범행 시간 다른 곳에서 다른 일을 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루커스가 인정한 범행들을 일지로 정리해 보니 그는 어떤 곳에서 살인을 한 뒤 하루 만에 1,600㎞를 이동해 또 다른 범행을 저지르는 식이었다. 최근 미국에서 공개된 5부작 다큐멘터리 ‘살인자의 고백’에 따르면 평생을 불우하게 산 루커스는 경찰의 호의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또는 영웅이 된 듯 우쭐해서 거짓말을 남발했다.

□ 이춘재의 연쇄살인 8차 사건을 두고 논란이다. 1989년 사건 당시 범인으로 특정됐던 윤모씨가 20년 동안 억울한 옥살이를 한 정황이 짙어지고 있다. 17일 경찰 발표대로라면 경찰의 가혹행위와 수사자료 조작이 엉뚱한 사람을 죄인으로 만든 것으로 보인다. 강요에 의한 자백이 부른 재앙으로 여겨진다. 루커스는 강제하지도 않은 거짓자백을 했다가 언론 등이 제기한 의구심 덕에 최악의 상황을 피했다. 루커스는 사실 여부가 불분명한 자백 때문에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집행을 면했고, 2001년 심장마비로 자연사했다. 65세였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