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7일 이낙연 국무총리 후임으로 20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을 지낸 정세균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지명했다. 국회에서 임명동의안이 통과되면 헌정 사상 최초로 입법부 수장 출신이 행정부 2인자인 총리가 된다. 문 대통령은 경제 살리기와 국민 통합 필요성을 내세워 파격 인선에 대한 이해를 구했지만, 삼권분립 정신 훼손 사례로 헌정사에 오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이 청와대 춘추관에서 직접 밝힌 정 후보자의 총리 지명 배경은 두 가지다. 첫째, 대기업 임원을 지내고 참여정부 때 산업부 장관을 역임, 실물 경제에 밝다는 점이다. 둘째, 6선 의원으로서 대화와 타협을 중시하고 항상 ‘경청의 정치’를 해왔다는 점이다. 문 대통령은 “입법부 수장을 지낸 분을 총리로 모시는 데 주저함이 있었다”면서도 “갈등과 분열의 정치가 극심한 이 시기에 야당을 존중하고 협치하면서 국민 통합과 화합을 이끌 수 있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진영 논리 사고에서 벗어나 갈등을 조정하는 의회주의자를 자처해온 정 후보자가 야당과의 협치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는 분명히 있다. 하지만 개인의 역량을 떠나 입법부 수장이 행정부 수장 아래로 가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헌법의 근간인 삼권분립을 흔들게 되기 때문이다. 총리는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 각부를 통할하는(헌법 86조 2항) 자리다. 반면 국회의장은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의 권력을 견제하는 삼권분립의 한 축이다. 국가 의전서열상으로도 국회의장은 2위, 총리가 5위다. 야당이 독재 정권 시절 시녀로 전락한 국회를 연상케 한다며 반발하는 이유다.
정 후보자 주변에서도 당초 “국회에서 선출하는 분권형 총리면 몰라도 어떻게 행정부 2인자인 현재의 총리 자리로 가겠냐”는 기류였다. 그런데도 ‘김진표 총리’ 카드가 진보 진영의 반대로 물 건너 가자 대타로 기용되는 모양새마저 수용한 것은 의회주의자로 쌓아 올린 정 후보자의 명성에 적지 않은 흠결로 기록될 것 같아 안타깝다. 헌법을 우습게 알고, 의도만 선하면 의회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마저 허물어도 문제없다는 이 정부의 근거 없는 낙관주의가 언제까지 계속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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