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전 소아당뇨 환자 대책 마련
보육교사 투약보조 강제 조항 제외
43명 중 27명이 보호자가 투약
경기도 용인시의 권혁준(35)씨는 지난달 말 딸 권주희 (가명ㆍ4)양이 1형 당뇨라는 진단을 받았다. 평생 인슐린 주사를 맞으며 살아야 하는 딸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먹먹해 하던 권씨에게 분노를 일으키는 일이 일어났다. 아이의 첫 사회경험이라고 할 수 있는 어린이집에서부터 차별을 경험한 것이다.
주희의 발병 소식을 접한 어린이집은 인슐린 주사는 물론 식사까지 집에서 해달라고 통보해왔다. 어린이집 단체 소풍날에는 부모가 아이와 시간을 가져달라고 알려왔다. 사실상 등원을 거부당한 셈이다. 권씨는 “영유아보육법은 어린이집에 투약공간을 마련하도록 했지만 현장에선 지켜지지 않고 있다”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가 2017년 11월 어린이집과 학교에서 소아당뇨병 환자를 보호하기 위한 대책을 발표한 지 2년이 지났지만 현장에서는 어린 환자들이 여전히 차별을 경험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당시 정부는 어린이집과 유치원, 초중고등학교에 소아당뇨어린이 보호 가이드라인을 배포하고 독립된 인슐린 투약공간을 마련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대책을 내놨다. 그러나 보육교사나 보건교사의 투약 보조가 강제 조항이 아니어서 주희처럼 소아당뇨병 환자가 등원을 거부당하는 경우가 끊이질 않는다는 것이 한국1형당뇨병환우회의 설명이다.
소아당뇨병으로도 알려진 1형 당뇨병은 인슐린이 체내에서 전혀 생성되지 않는 당뇨병으로, 하루에 수 차례 혈당을 측정하고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한다. 이 때문에 어린 환자가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거나 화장실에 숨어서 인슐린 주사를 맞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교육부와 보건복지부가 함께 대책을 만들었다. 영유아보육법(어린이집)과 학교보건법(유치원과 초중고교)도 개정돼 학교 관계자가 어린 환자의 투약을 도울 수 있는 근거도 마련됐다.
그러나 해당 법안은 강제력이 없어 현장에서 무시당하기 일쑤란 것이 환우회의 주장이다. 영유아보육법 제32조 5항은 ‘간호사 또는 간호조무사가 영유아가 의사의 처방, 지시에 따라 투약행위를 할 때 이를 보조하게 할 수 있다’라고 돼 있을 뿐 ‘해야 한다’라고 규정하지는 않았다. 학교보건법에는 투약행위 보조에 관한 내용마저 없다. 다만 1형당뇨로 학생에게 저혈당 쇼크 등이 발생했을 때 보건교사가 응급약 투약 등 응급처치를 할 수 있다고 개정됐을 뿐이다. 주희 사례처럼 어린이집 측이 투약 보조를 거부하면 환자 측이 대응할 방안이 없다는 설명이다.
이에 대해 김미영 환우회 대표는 “해당 어린이집은 법이 갖추도록 규정한 간호조무사를 원장이 겸임하고 있지만 그마저 원내에서 혹시나 아동이 잘못될 경우 책임이 따를까 두려워해 투약을 거부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권혁준씨는 “아내가 직접 어린이집에 가서 주사를 놓겠다고 설득해도 원장은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라고 털어놨다.
실제로 어린이집에서의 투약은 보호자가 맡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복지부에 따르면 올해 6월 기준 전국 어린이집에 재원한 소아당뇨병 환자는 43명으로, 이 가운데 27명은 보호자가 인슐린을 투약하고 있다. 10건은 집에서 투약하고 있었고 보건교사나 어린이집이 도와주는 경우는 6건에 그쳤다. 인구 10만명당 소아당뇨 어린이 환자가 2006년 14.9명에서 2016년 18.3명으로 점차 증가해온 상황이어서 교육ㆍ보육기관에서 투약에 어려움을 겪는 환자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정부는 현장에서 문제가 일부 발생하고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내년 1월부터 주사를 대체하는 인슐린자동주입기에 건강보험이 적용돼 널리 이용되면 문제가 획기적으로 해결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흥권 국무조정실 평가관리지원과장은 “보육교사나 당직교사들이 주사를 직접 놓을 필요가 없게 돼 마찰이 줄어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김미영 대표는 “1형당뇨뿐 아니라 건강상 문제가 있어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을 돌봐주는 데 대한 인센티브(유인책)를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부여할 필요도 있다”고 주장했다.
김민호 기자 kmh@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