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돌아보는 2019 경제]
재정집행 따라 분기별 성장률 널뛰기
글로벌 금융위기 이래 최악의 실적 기록
잠재성장률 갈수록 하락… 위기감 커져
지난해 이맘때 정부는 올해 우리나라 경제가 2.5~2.6% 성장할 거라고 내다봤다. 그해(2.7%)보다는 조금 못하겠지만 잠재성장률 수준을 유지할 거란 느긋한 전망이었다. 막상 1년이 흐른 지금 정부가 추정하는 올해 성장률은 2.0%에 불과하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래 10년 만에 최악이자 역대 다섯 번째로 낮은 성장률 실적을 받아들 처지가 된 것이다.
미중 무역분쟁 격화와 그에 따른 세계교역 위축이 수출주도형 구조인 우리 경제에 타격을 줬다는 ‘변명거리’가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악재는 석유파동, 외환위기, 금융위기 등 과거 성장률을 뚝 떨어뜨렸던 메가톤급 쇼크에 비할 바가 아니다. 더구나 성장률 하락의 저변에는 인구 감소, 투자 둔화, 생산성 정체를 수반한 성장잠재력의 급속한 악화가 자리잡고 있는 터라 한국 경제에 대한 위기의식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정부는 성장률을 방어하고자 재정 확대에 안간힘을 썼다. 지난해보다 10% 가까이 늘어난 470조원의 예산을 편성한 데 이어 하반기엔 6조원에 가까운 추가경정예산을 추가로 풀었다. 덕분에 정부의 성장기여도는 커졌지만 재정건전성 악화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구조개혁, 신성장동력 발굴 등 재도약의 해법은 분명하지만, 우리 경제에 이런 과제를 감당할 만한 여력이 남았는지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지는 형국이다.
◇금융위기 이후 최저 성장
22일 한국은행과 정부에 따르면 올해 성장률은 1956년(0.7%), 1980년(-1.7%), 1998년(-5.5%), 2009년(0.8%) 이후 사상 다섯 번째로 낮은 실적을 낼 전망이다. 2차 석유파동(1980년), 외환위기(1998년), 금융위기(2009년) 등 전세계적 충격 없이도 성장률이 2%에 턱걸이할 상황인 것이다.
우리 경제의 성장세가 이처럼 짓눌린 것은 투자 위축과 수출 부진의 영향이 크다. 미중 무역분쟁과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중국 성장 둔화 등 대외 역풍이 전세계 성장률과 교역량을 급격히 떨어뜨렸고, 이는 대외환경 변화의 영향을 크게 받는 우리 경제에 직격탄이 됐다. 올해 설비투자는 전년 대비 7.7% 감소하고, 건설투자도 4.0% 줄어들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에도 역성장한 설비투자(-2.4%)와 건설투자(-4.3%)가 2년 연속 동반 위축을 기록할 판이다.
◇재정 쏟아부어 2% 성장 턱걸이
이마저도 재정 확장이 없었다면 달성하기 어려웠다. 올해 전분기 대비 성장률은 1분기 -0.4%, 2분기 1.0%, 3분기 0.4%로 널뛰었는데, 민간 영역보다는 정부 기여도에 따라 움직였다. 정부 부문의 성장기여도는 1분기 -0.6%포인트에서 재정집행이 집중된 2분기 1.2%포인트로 1%대 성장을 이끌었다. 2분기 재정 확대의 기저효과가 작용한 3분기에도 정부기여도(0.2%포인트)는 전체 성장률의 절바을 책임졌다.
정부는 6월까지 관리재정수지 적자 59조5,000억원이라는 역대 최고 수준의 재정적자를 감수하면서도 미리 편성해놓은 예산 59.8%를 상반기에 당겨썼다. 올해 11월까지 재정집행 실적은 중앙재정 기준 90.3%로 지난해(89.0%)보다 높은 수준이다. 지방재정(75.8%→77.1%), 지방교육재정(82.5%→83.3%)도 정부의 지속적인 독려로 집행률이 뛰었다. 올해 연간 2% 전망치 달성 여부 또한 최종 재정집행률이 정부 목표치(중앙 97%, 지방 90%, 지방교육 91.5%)에 얼마나 근접하느냐에 달린 형국이다.
재정 확장 기조는 내년에 더욱 강화된다. 국회는 내년 예산을 올해 469조6,000억원(본예산 기준)보다 9.1%(43조2,000억원) 늘린 512조3,000억원으로 최종 확정했는데, 올해 예산 증가율(9.6%)에 이어 2년 연속 ‘슈퍼 예산’이다.
내년 예산을 반영한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39.8%다. 일각에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110.5%) 등과 비교해 아직 양호한 수준이라고 평가하지만, 문제는 가파른 채무 증가 속도다. 정부 계획대로 관리된다고 하더라도 5년 뒤인 2023년엔 국가채무비율이 46.4%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뚝뚝 떨어지는 잠재성장률
전문가 사이에선 정부의 ‘예산 주도 성장’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우리 경제의 성장 능력을 나타내는 잠재성장률이 꾸준히 낮아지고 있는 탓이다. 성장 정체가 일시적이라면 재정의 역할을 기대해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효과를 보기도 전에 빚더미에 앉을 수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2016~2020년 잠재성장률은 2.7~2.8%로 2017년 추정한 잠재성장률(2.8~2.9%)에 비해 0.1%포인트 하락했다. 올해와 내년만 따로 떼 놓고 보면 잠재성장률이 2.5~2.6%에 그친다.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은 2001~05년 5.0~5.2%에서 2006~10년 4.1~4.2%, 2011~15년 3.0~3.4%로 빠른 추세로 떨어지고 있다. 권지호 한은 과장은 “최근의 경제상황이 일시적 부진이라면 확장적 거시정책을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잠재성장률 하락에 기인하는 것이라면 구조개혁을 통해 성장 잠재력을 높여야 한다”며 “저출산, 고령화로 생산연령인구가 줄어들면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은 장기적으로 더욱 낮아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잠재성장률 전망도 밝지 않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올해부터 2023년까지의 잠재성장률은 2.4%로 2016~18년(2.9%)보다 0.5%포인트가량 하락할 것으로 추산된다. 부문별 기여도를 보면 노동 투입(0.1%포인트)과 총요소생산성(1.2%포인트)의 기여도가 제자리걸음을 하는 가운데 자본 투입 기여도가 1.6%포인트에서 1.1%포인트로 급감할 전망이다. 노동 부문은 생산인구 감소, 자본 부문은 신성장산업 부재, 총요소생산성은 혁신 등 생산성 향상 노력 부족이 잠재성장률을 잠식하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정부가 수소차나 시스템반도체 같은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하고 고용률을 끌어올리려 애쓰고 있지만, 성장잠재력 강화에 필요한 근본적 구조 개혁에 도달하려면 아직 멀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태기 단국대 교수는 “기업들이 자본 여력은 있는데 정책 불확실성으로 투자를 꺼리는 상황”이라며 “민간 부문 활력을 위해선 규제완화와 근본적인 구조개혁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박세인 기자 sane@hankookilbo.com
세종=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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