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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진 해리스의 ‘사랑’(12.23)

입력
2019.12.23 04:14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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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2월 법원에 출두하는, 명문 여학교 교장이자 '치정 살인의 피의자' 진 해리스(가운데). AP 연합뉴스
1981년 2월 법원에 출두하는, 명문 여학교 교장이자 '치정 살인의 피의자' 진 해리스(가운데). AP 연합뉴스

마데이라스쿨(Madeira School)은 1903년 설립된 버지니아 포토맥 강변의 명문 여성 사립 중등 기숙학교다. ‘품위와 교양을 지닌 여성 리더를 길러내는 것’이 목표라는데, 아일랜드 출신의 작가 존 코널리는 소설 ‘킬링 카인드’에서, 마데이라스쿨 여학생들은 음식을 먹을 때도 요리에 걸맞은 스푼이 없으면 먹지 않고 절대로 길에 침을 뱉는 일이 없다고 묘사한 적이 있다. 학교 교훈(motto)은 ‘Festina Lente(Make haste slowly)’. 저술가 데이비드 브룩스는 ‘인간의 품격’이란 책에서 그 의미를 “재난이 닥쳐도 직분을 다할 것, 마지막까지 품위를 지킬 것”이라고 풀어 썼다.

마데이라스쿨 교장 진 해리스(Jean S. Harris, 1923.4.27~2012.12.23)가 1980년 3월 10일 2급살인(고살) 혐의로 뉴욕 경찰에 체포됐다. 피살자는 저명한 심장 전문의이자 수백만 권이 판매된 베스트셀러 다이어트 안내서 저자였던 허먼 타노워(Herman Tarnower, 1910~1980)였다. 타노워는 해리스와 14년을 사귄 동안에도 썩 성실한 연인이 아니었고, 사건 당시 그에겐 30년 연하의 비서 겸 애인이 있었다.

경찰 조사에서 해리스는 32구경 리볼버 권총을 지닌 채 맥린에서 타노워의 뉴욕 집까지 장장 5시간 운전해 간 까닭을 “그와 마지막으로 대화를 나눈 뒤 그가 보는 데서 자살하기 위해서”라고 진술했다. 자다 깬 타노워가 그에게서 권총을 빼앗으려다 일어난 사고라는 거였다. 하지만 그는 장전된 총알 외에 여분의 실탄을 소지한 이유, 타노워가 4발이나 맞은 이유를 해명하진 못했다. 그의 침실에는 여성의 속옷과 장신구 등이 놓여 있었다.

마데이라스쿨 교장의 ‘치정 살인’ 재판에 세인의 관심이 집중됐지만, 그를 동정한 이는 많지 않았다. 베티 프리댄은 그를 “가련한 마조히스트일 뿐”이라며 그 사건이 페미니즘 이슈와 얽힐 여지를 단호하게 없앴다. 해리스는 여성 8명 남성 4명으로 구성된 배심원단에 의해 유죄 평결(징역 15년형)을 받았고, 12년 뒤인 93년 가석방됐다.

복역 중 재소자를 상대로 자녀 교육 등을 강의한 그는 교정당국과 협의해 옥중 산부가 아이와 최소 1년을 함께 지낼 수 있는 시설을 마련하게 했고, 가석방 후에도 재소여성 복지 후원재단을 설립해 활동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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