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맞닿은 12사도 예배당…신안 ‘섬티아고 순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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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맞닿은 12사도 예배당…신안 ‘섬티아고 순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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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8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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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둣길로 연결된 증도 병풍리 4개 섬에…하나하나가 그림 같은 작품 

신안 증도면 병풍리 대기점도 선착장에 세워진 ‘베드로의 집’. 짙푸른 지붕과 하얀 외벽이 그리스 지중해 감성을 자극한다. 예배당 옆 작은 종탑과 화장실도 눈부시다. 신안=최흥수 기자

신안 증도는 오래 전 육지와 연결됐지만, 증도면 병풍리의 5개 유인도(병풍도ㆍ대기점도ㆍ소기점도ㆍ소악도ㆍ진섬)는 여전히 배로만 갈 수 있다. 병풍도 아래 노둣길로 연결된 4개 섬에 최근 예수의 열두 제자를 상징하는 작은 예배당이 세워졌다. 모양이 독특해 하나하나가 작품이다. 12개 작품을 연결한 길은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에 비유된다. 섬과 섬을 걷는 길이니 ‘섬티아고’ 순례길이다.

한국전쟁 도중 살해당한 문준경 전도사 순교기념관 내부. 증도면 사무소 부근에 있다. 문 전도사는 증도의 여러 섬을 돌며 11개의 교회를 세웠다.

이들 섬이 특별히 기독교와 인연이 깊다 하기는 어렵지만 연관성을 찾는다면 문준경(1891~1950) 전도사를 빼놓을 수 없다. 신안 암태도에서 태어난 그는 여성으로는 드물게 경성성서학원에서 공부한 후 증도로 돌아와 이 섬 저 섬을 돌아다니며 11개의 교회를 개척했으나, 한국전쟁 중 좌익 세력에 의해 피살당했다. 증도면 사무소 인근에 ‘문준경 전도사 순교기념관’이 있다.

하얀 종탑 뒤로 푸른 바다와 섬이 보인다.
대기점선착장 방파제에 세워진 ‘베드로의 집’.
기점ㆍ소악 ‘섬티아고’ 순례길의 2번 ‘안드레아의 집’.
병풍도와 연결된 노둣길이 보이는 언덕에 세워 바로 앞에 드넓은 갯벌이 펼쳐진다.

첫 번째 예배당 ‘베드로의 집’은 대기점항 방파제에 세워졌다. 하얀 건물과 파란 지붕이 그리스 산토리니처럼 지중해의 이국적인 감성을 자아낸다. 작은 종탑과 화장실까지 눈부시게 하얗다. 2번 작품 ‘안드레아의 집’은 병풍도와 연결되는 노둣길이 내려다보이는 마을 입구에 있다. 흰 외벽에 짙은 청옥빛의 둥근 지붕, 첨탑에 하얀 고양이 두 마리를 얹은 모양이 독특하다.

3번 야고보의 집은 마무리 공사 중.
첨성대를 닮은 4번 ‘요한의 집’.
내부에서 소박한 들판이 보인다.
남프랑스 건축 양식으로 지은 5번 ‘필립의 집’.

3번 ‘야고보의 집’은 아직 마무리 공사 중이다. 논길을 지나 얕은 숲에 안기듯 세웠다. 4번 작품 ‘요한의 집’은 첨성대를 닮았다. 건물 안팎에 생명ㆍ평화를 염원하는 작가의 바람이 타일아트로 채워져 있다. 세로로 길게 열린 바람 창 너머로 소박한 들판과 무덤 하나가 보인다. 대기점도 남측 끝머리에 위치한 5번 작품 ‘필립의 집’은 툴루즈에 거주하는 작가(장미셀 후비오)가 프랑스 남부 건축 양식으로 지었다. 인근 바닷가에서 주워 온 갯돌로 벽돌 사이를 메우고, 주민이 사용하던 절구통으로 지붕을 마감하는 등 지역의 정서를 담으려 한 노력도 돋보인다.

6번 ‘바르톨로메오의 집’은 이제 기초공사 마무리.
짙은 파랑이 신비감을 자아내는 7번 ‘토마스의 집’.
러시아 정교회를 본뜬 8번 ‘마태오의 집’. 마무리 공사 중이다.
‘어부의 기도소’를 본뜬 9번 ‘작은 야고보의 집’.
내부에서 보면 물고기 모양의 스테인드글라스가 두드러진다.

소기점도로 넘어가서 만나는 6번 작품 ‘바르톨로메오의 집’은 이제 막 골격을 갖춘 상태다. 7번 작품 ‘토마스의 집’은 새하얀 회벽에 비대칭 창문이 특징이다. 정문을 장식한 푸른 안료는 신비감을 더하기 위해 모로코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8번 ‘마테오의 집’은 위치도 모양도 독특하다. 소기점도와 소악도를 연결하는 노둣길 중간에 터를 잡았다. 러시아 정교회를 닮은 작품의 돔은 섬에서 많이 재배하는 양파를 형상화했다. 아직 마무리 공사 중이어서 내부는 들어갈 수 없다. 소악도 둑방에 9번 작품 ‘작은 야고보의 집’이 있다. 유럽의 바닷가에서 볼 수 있는 ‘어부의 기도소’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오두막처럼 자그마한 내부로 들어서면 푸른 물고기 모양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인상적이다.

깜찍한 동화 속 그림 같은 10번 ‘유다 타다오의 집’.
11번 ‘시몬의 집’은 바다로 열린 공간이다.

진섬으로 넘어가면 산뜻한 외관의 10번 작품 ‘유다 타대오의 집’이 반긴다. 어구가 어지럽던 쓰레기장에 지은 파스텔 톤 예배당이다. 주변은 털머위와 해국 등 자생식물을 심어 작은 공원으로 조성했다. 진섬 남쪽 언덕에 11번 예배당 ‘시몬의 집’이 있다. 문이 없이 바다로 열린 공간을 바람과 파도소리와 넉넉한 바다 풍경이 채운다. 치유의 공간이기를 바라는 작가의 의도가 반영돼 있다.

대숲 지나고 작은 모래사장을 지나면 무인도 딴섬에 12번 ‘가롯 유다의 집’이 있다.
만조 시 바닷물이 차면 예배당까지 갈 수 없고 먼발치에서 바라봐야 한다.
‘가롯 유다의 집’ 앞에 설치된 나선형 종탑.
예배당 내부에서 보는 풍경도 그림이다.

이곳에서 대숲으로 난 길을 통과하고 작은 모래사장을 지나면 무인도인 딴섬에 마지막 작품 ‘가롯 유다의 집’이 세워져 있다. 모래 해변 너머로 보이는 풍경이 언뜻 사진으로 많이 본 프랑스의 ‘몽생미셀’과 흡사하다. 고딕양식의 예배당 앞에 붉은 벽돌을 나선형으로 돌려 쌓은 종탑이 특이하다. 작가는 ‘이곳에서 열두 번 종을 울리며 지치고 힘들고 뒤틀린 심사를 하나씩 허공에 날려버리고, 새로운 일상으로 돌아갈 힘과 지혜를 얻으라’는 마음으로 작업했다고 한다.

각각의 작품 내부는 독특한 분위기의 작은 기도 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12사도의 이름과 병행해 건강ㆍ생각ㆍ그리움ㆍ평화ㆍ생명ㆍ감사ㆍ인연ㆍ기쁨ㆍ소원ㆍ칭찬ㆍ사랑ㆍ지혜의 집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어 종교와 상관없이 자신을 돌아보는 사색의 공간이다.

신안군이 소기점도에 최근 개설한 게스트하우스. 병풍리 5개 섬에서 사실상 유일한 숙박시설로 카페와 식당을 겸하고 있다.
가족 여행객이 병풍도와 대기점도 사이 노둣길을 배경으로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병풍도는 지금까지 관광과는 거리가 먼, 때묻지 않은 섬이다. 그만큼 불편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320여명이 거주하는 5개 섬에 숙박시설은 민박집 하나와 신안군에서 최근 개설한 게스트하우스가 전부다. 관광지마다 흔한 펜션과 카페는 없다. 5개 섬은 ‘노둣길’로 연결돼 있다. 애초 징검다리였지만 현재는 차 한 대 지날 정도의 콘크리트 도로다. 매일 두 차례 만조 시 2시간 동안 사람과 차가 통행할 수 없는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물때는 매일 바뀐다.

병풍도 보기선착장. 지도읍 송도선착장까지 하루 4회 도선이 운항한다.
병풍도 5개 섬 주변은 드넓은 갯벌이다. 때묻지 않은 만큼 여행객은 어느 정도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신안 증도면 여행 지도. 송정근 기자

압해도 송공선착장에서 대기점도까지 하루 3편 여객선이 운항한다. 70분가량 걸린다. 대기점항을 출발해 12개 작품을 모두 보고 돌아오면 19km다. 첫 배(오전 8시53분)로 도착해 걸어서 돌아보고 막 배(오후 4시34분)로 나온다 해도 빠듯하다. 대기점항에서 자전거를 대여하면 한결 수월하다. 지도읍 송도선착장에서 병풍도 보기선착장까지도 하루 4회 여객선이 왕복한다. 약 25분 걸려 운항 시간은 줄지만, 병풍도를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왕복 순례 코스는 10km 길어진다. 섬 여행 안내서는 차를 두고 오라고 권고하지만 하루 묵을 요량이 아니면 부득이 차량을 배에 싣고 가는 수밖에 없다.

신안=글ㆍ사진 최흥수 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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