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주 정치인 로버트 멘지스(Robert Menzies)는 2차례에 걸쳐 18년 넘게 집권한 최장수 총리로서, 2차대전 이후 1950, 60년대 자유당을 기반으로 한 보수 정치의 틀을 닦았다. 그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린다.
호주의 악명 높은 비백인 이민 제한 정책인 ‘백호주의’가 법률로 공식 폐기된 것은 1975년 고프 휘틀럼 노동당 집권기였고, 원주민(Aborigines)의 포괄적인 투표권을 보장한 헌법 개정안이 통과된 것도 멘지스가 사임한 직후인 1967년 헤럴드 홀트 자유당 정부 시절이었다. 호주의 한 저널리스트는 “1970, 80년대 교육을 받아오는 동안 내게 문화적 영향력을 행사한 다양한 분야의 거의 모든 사람들-교사와 부모, 작가들, 영화인들-은 공동의 적(enemy)을 공유했는데, 바로 그게 로버트 고든 멘지스였다”고 적기도 했다.
그는 영연방주의자로서 영국의 군사ᆞ외교정책에 거의 전적으로 동조했고, 철저한 반공주의자로서 전후 냉전의 맹주인 미국의 외교정책에 적극 보조를 맞췄다. 그런 면들이 그를 추종적인, 비주체적인 정치인으로 여겨지게 했고, 호주의 정치ᆞ사회ᆞ문화적 다양성을 억압한 인물로 인식되게 했다. 그는 1951년 호주-뉴질랜드-미국 방위조약 ‘ANZUS’와 54년 동남아시아조약기구에 가입해 태평양 냉전 전선의 한 축을 담당했고, 호주군을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에 파병했다.
전후 호황도 냉전과 더불어 그의 장기 집권을 가능하게 했다. 재임 중 호주 노동자 평균 소득은 50% 이상 증가했고, 유급휴가 일수도 연 3주로 늘어났다. 국가 장학금을 확대해 교육 기회를 넓혔고, 의료 서비스도 나아졌다. 2차대전 후 비백인 난민 800명의 입국을 허용한 것도, 원주민 참전 군인의 참정권을 부여한 것도 그의 집권기였다.
호주 작가 피터 템플의 스릴러 소설 ‘브로큰 쇼어’에는 한 나이 든 부인이 멘지스를 칭송하는 대목이 등장한다. “멘지스 총리가 물러날 때 기거할 집조차 없었다는 사실 알아요?(…) 자기 개인이 쓴 전화요금까지 다 계산해서 냈어요. 캔버라 총리 공관에서 늙으신 어머니한테 전화할 때마다 통에 동전을 집어넣었죠. 작은 저금통에. 그게 차면 재무부에 넘겼어요 그건 일반 국고로 들어갔고요.” 그를 악마화하는 ‘자칭’ 진보주의자들을 향한 변호 혹은 한 세대의 항변일지 모른다. 최윤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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