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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필의 제5원소] ‘타다’ 너머

입력
2019.12.17 18:00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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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다는 타다이고 쿠팡은 쿠팡이다. 물론 나는 타다 서비스가 혁신적인 공유경제의 아이콘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택시라는 운송업의 패러다임 속에서만 타다를 규정하려 하면 앞으로 우리에게 무엇이 남게 될지 걱정이다. 바로 다음 문을 열고 나가면 자율주행 자동차가 기다리고 있음을 누구나 잘 알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중구에서 운행 중인 타다. 이한호 기자
타다는 타다이고 쿠팡은 쿠팡이다. 물론 나는 타다 서비스가 혁신적인 공유경제의 아이콘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택시라는 운송업의 패러다임 속에서만 타다를 규정하려 하면 앞으로 우리에게 무엇이 남게 될지 걱정이다. 바로 다음 문을 열고 나가면 자율주행 자동차가 기다리고 있음을 누구나 잘 알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중구에서 운행 중인 타다. 이한호 기자

고전(classic)과 현대(modern)를 가르는 기준에는 여럿이 있겠지만 물리학에서는 이 기준이 비교적 뚜렷하다. 현대물리학은 상대성이론 및 양자역학과 함께 시작했다. 시기적으로도 우연히 20세기의 시작과 함께 태동했다. 고전물리학과 대비되는 가장 뚜렷한 특징을 꼽으라면 현대물리학은 인간의 감각 경험과 직관을 넘어서는 영역을 다루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과학자들은 자연을 정확히 이해하고 기술하기에는 우리 인간의 언어와 감각과 경험이 대단히 부족함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아인슈타인은 인간에게 익숙하고 편리했던 시간과 공간이라는 개념이 이 우주를 기술하는 데에 적합하지 않음을 알아냈다. 우주를 기술하기 위해서는 이 우주의 근본적인 성질을 품고 있는 우주 본연의 언어를 이용해야 한다. 아인슈타인이 찾은 우주 본연의 언어는 광속이었다. 특수상대성이론은 우주 본연의 언어인 광속으로 인간의 언어인 시간과 공간을 재해석한 이론이다.

비슷한 일이 원자 이하의 세계에서도 일어났다. 19세기까지 잘 써 왔던 파동이나 입자라는 개념은 미시세계를 돌아다니는 전자나 빛 앞에 무력했다. 게다가 모든 게 확률론적이라니. 고양이의 삶과 죽음이 뒤섞여 있다는 양자 중첩이나 유령 같은 원격작용을 사주하는 얽힘 같은 현상은 우리 일상의 거시적인 세상에서는 결코 경험해 보지도 못했고 직관적으로 이해하기도 힘들다. 20세기 물리학이 성공적일 수 있었던 이유는 과학자들이 인간 언어와 감각 경험의 한계를 인정하고 새로운 규칙을 기꺼이 받아들여 충실히 따랐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이 과정을 생각의 회로를 바꿀 정도의 지적 고통으로 묘사하기도 한다. 거시적인 현상에 익숙한 우리의 감각과 언어와 사고방식은 최소한 수십만 년에 걸친 호모 사피엔스의 진화의 결과물이다. 그러니까 생각의 회로를 바꾸는 일은 진화의 압력을 이기는 일이다. 배고픔을 참으면서 다이어트를 해 본 사람이라면 진화의 압력을 이기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 것이다. 현대물리학이 위대한 이유는 기나긴 인류 진화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진화의 압력을 거슬러 인류 자신을 탄생시킨 이 우주를 제대로 볼 수 있게 해 줬기 때문이다.

고전과 현대의 차이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 준 물건이 바로 핵무기였다. 핵무기는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의 집약체이다. 고전과 현대의 차이는 재래식 폭탄과 핵무기의 차이만큼이나 크다.

4차 산업혁명 시대로 진입하는 지금은 여러모로 한 세기 전의 과학계와 많이 닮았다. 기존의 문법과 규칙이 무력화되고 있으나 새로운 패러다임이 완전히 들어서지 못한 과도기라는 점에서도 그렇고 그 이전과 이후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를 것이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핵무기 이전과 이후가 다르듯이 스마트폰 이전과 이후가 다르다. 아마도 인공지능은 훨씬 더 급격한 변화를 몰고 올 것이다. 요즘 한참 논란이 일고 있는 ‘타다’는 택시인가, 아니면 렌터카인가? 쿠팡은 물류 기업인가, IT 기업인가? 비트코인은 화폐인가, 21세기의 튤립인가? 이 모든 혼란의 원인은 택시니 렌터카니 물류 기업이니 화폐니 하는 말들이 타다와 쿠팡과 비트코인을 온전히 설명할 수 없다는 한계 때문이다. 슘페터의 유명한 말처럼 “마차를 연결한다고 기차가 되지 않는다.”

타다는 타다이고 쿠팡은 쿠팡이다. 물론 나는 타다 서비스가 혁신적인 공유경제의 아이콘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택시라는 운송업의 패러다임 속에서만 타다를 규정하려 하면 앞으로 우리에게 무엇이 남게 될지 걱정이다. 바로 다음 문을 열고 나가면 자율주행 자동차가 기다리고 있음을 누구나 잘 알고 있다. 그때는 더 이상 지금의 택시나 운송업이라는 개념 자체가 무의미해질 것이다. 대단히 제한적이긴 하지만 이미 1년 전 미국에서는 자율주행차 상용서비스가 시작됐다. 아마 택시와 자율주행차의 차이는 재래식 폭탄과 핵무기의 차이보다 더 크지 않을까? 이른바 ‘타다 금지법’으로 알려진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개정안은 플랫폼 운송 사업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긴 하지만 기여금 납부나 면허총량제 등 큰 틀에서는 택시의 패러다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택시라는 언어로 해결책을 찾는 것과 인공지능 및 자율주행의 언어로 새로운 규칙을 모색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결과를 낼 것이다.

택시기사들의 생존은 중요한 문제이다. 자율주행 자동차가 도입되면 운송업 전체에서 실직자가 쏟아져 나올 것이다. 선의만으로는 이들을 구할 수 없다. 오히려 변혁의 소용돌이 속으로 한꺼번에 쓸려가 버릴 수도 있다. 지금의 여객법 개정안으로 이들의 생존을 담보할 수 있는 유효기간은 길어야 10년이다. 비단 타다 문제만 이럴까 싶어 걱정이다. 정책의 방향은 현재에 발을 딛고 미래를 향해야 한다. 아쉽게도 여의도 시계는 거꾸로 가는 것만 같다. 자유한국당은 여전히 박정희 시대에 머물러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1980년대를, 정의당은 IMF 전후 시절을 살고 있다. 지금은 알파고가 등장하고도 3년이 지났다. 내일 모레면 벌써 2020년이다.

이종필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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