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경찰관 산도발, 과거 500여건 이상 고문ㆍ학살 가담 혐의
민주화 이후 프랑스로 도피… 34년 만에 법의 심판대 서게 돼
아르헨티나의 군부 독재 시절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을 납치ㆍ감금ㆍ살해하는 데 가담해 ‘도살자’로 불린 전직 경찰관이 프랑스로 도피한 지 34년 만에 본국으로 송환됐다. 인권 탄압에 적극 앞장서다 프랑스 파리에서 대학 교수로 180도 변신하는 데 성공했지만, 결국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16일(현지시간) AFP통신 등 프랑스 언론에 따르면, 프랑스 경찰은 아르헨티나 경찰관 출신인 대학교수 마리오 알프레도 산도발(66)을 지난 11일 파리 근교에서 체포해 이날 항공편으로 아르헨티나에 돌려보냈다.
산도발은 1976~1983년 아르헨티나 군부 독재 시기에 경찰관으로 근무하며 민주화 인사들에 대한 투옥과 학살 과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아르헨티나에서는 전국적으로 3만명의 시민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사라졌는데, 그는 최소 500건 이상의 납치와 고문, 살해에 가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도살자’라는 별칭이 붙은 이유다.
아르헨티나 민주화가 이뤄지자 산도발은 해외로 도피했고, 1985년부터 프랑스에서 지내 왔다. 자신의 과거를 철저히 숨긴 그는 1997년 프랑스 국적을 취득한 데 이어,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아 파리 근교 마른라발레 대학과 소르본 라틴아메리카연구소 등에서 교수로도 재직했다.
이렇게 자신의 추악한 과거를 지우는 데 성공했던 산도발이 이번에 아르헨티나로 송환된 건 1976년 10월 납치ㆍ실종된 대학생 에르난 아브리아타 사건이 직접적 계기가 됏다. 건축 전공 학생이었던 아브리아타는 1976년 아르헨티나 군부 쿠데타 직후, 정치인과 반체제 활동가들을 투옥하고 고문하는 장소였던 부에노스아이레스 해군 훈련소에 감금돼 있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군부가 투옥된 이들을 강제로 바다에 수장하는 등 대량학살을 했다는 게 정설이다.
산도발은 그러나 자신의 혐의 일체를 부인하고 있다. ‘아르헨티나에선 공정한 재판을 받지 못하고, 고문도 받을 수 있다’는 주장도 펴고 있다. 프랑스의 고등행정법원인 콩세유데타는 지난해 8월 그의 아르헨티나 송환 판결을 내렸으나, 산도발은 이에 불복하며 헌법재판소에 항고했다. 하지만 헌재는 “아르헨티나에서 피해자인 아브리아타의 시신이 아직 발견되지 않아 공소시효를 적용할 수 없는 문제”라며 콩세유데타의 송환 판단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최근 결정했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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