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란합니다. 조만간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중대 발표가 있을 예정이라, 아무래도 눈치가 보이네요.”
유통업계 한 중견기업 A사는 최근 연말을 맞아 사회공헌 활동을 문의하는 언론들에게 답변을 주기 어렵다며 잇따라 난색을 표했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A사를 포함한 대다수 유통기업들은 오는 19일 공정위가 공개할 예정인 ‘대형 유통업체 서면조사 실태 발표’를 앞두고 ‘몸 사리기’를 하고 있다.
공정위의 이번 조사는 백화점과 마트, 홈쇼핑, 편의점 등 전체 유통업계를 들여다 봐서 불공정거래 행위를 찾아내 바로잡고 근절하기 위한 조치다. 때문에 대형 유통업체뿐만 아니라 그들과 거래하는 중소기업들도 바짝 긴장하고 있긴 마찬가지다.
그런데 공정위는 조사 결과 발표를 앞두고 돌연 기업들 ‘달래기’에 나섰다. 공정위는 지난 12일과 13일 각각 ‘소비자중심경영(CCM) 우수기업 포상’과 ‘공정거래 및 상생협력 모범사례 발표’ 행사를 진행했다. 기업들에게 채찍을 주기 전 당근부터 먼저 내준 셈이다.
공정위가 CCM 우수기업 포상을 한 건 올해가 처음이다. 대통령 표창과 국무총리 표창에 각각 2개 기업, 공정거래위원장 표창에 5개 기업을 선정해 시상했다. 공정위는 지난 2007년부터 CCM 우수기업을 선정해 인증제도를 실시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그 중 최우수 등급 기업들을 뽑아 상을 준 것이다. 기업의 모든 경영 활동을 소비자 중심으로 맞춰 개선하고 있는지를 종합적으로 평가해 수상 기업을 선정했다는 게 공정위의 설명이다.
지난 9월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이 취임한 직후 공정위는 기업들에 서슬 퍼런 칼끝을 겨눴다. 지난달에는 납품업체에 대한 ‘갑질’로 불공정행위를 했다며 한 대형마트에 400억원이 넘는 사상 최대 과징금을 부과해 업계를 긴장시켰다. 또한 중견기업들의 내부거래를 통한 ‘일감 몰아주기 실태 조사’를 진행해 전격 발표하기도 했다. 강하게 몰아붙이던 공정위가 한 달 만에 숨 고르기에 들어가 ‘기업 감싸기’에 나선 셈이다.
하지만 업계에선 “결국 공정위의 생색내기용 아니냐”는 얘기가 곳곳에서 흘러 나온다. 유통업계 B기업 관계자는 “그간 공정위가 기업 때리는 이미지로만 부각됐는데, (이번 시상으로) 이미지를 개선하려는 것 아니겠느냐”고 귀띔했다.
기업들이 시큰둥한 또 다른 이유는 포상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이번 CCM 포상이나 공정거래 및 상생협력 모범사례에 꼽힌 기업들 중에는 19일 발표될 서면조사 실태에 포함된 곳도 있다. 해당 기업 입장에선 포상이 달가울 리 없다.
공정위가 발표한 포상 심사 기준에는 범죄경력이나 산업재해, 불공정행위, 임금체불, 국세 체납 등의 제한 사유가 포함돼 있다. 그런데 CCM 인증이나 상을 받은 기업들 중에는 오너 집안의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거나 실제로 실형을 선고 받아 구설에 오른 기업들이 있는가 하면, 납품업체를 상대로 한 불공정거래 행위가 적발돼 제재를 받았던 기업들도 존재한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공정위가 병 주고 약 주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를 바라보는 소비자들 역시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대학생 손지연(가명)씨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중소 납품업체에게 갑질을 했다며 과징금을 받던 곳이 모범사례 기업으로 선정되는 게 선뜻 이해가 가질 않는다”고 말했다.
강은영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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