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실린 원고를 다시 읽고 묶는 동안 저는 제 자신이 작가가 되기 전의 ‘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와 같이 시작했던 작가들이 치열한 작업을 통해 더 나은 인간이 되어가는 동안 저는 신인의 마음, 구경꾼의 마음으로 나이를 먹었습니다. 하지만 휴지기를 부끄러워하거나 후회하지는 않겠습니다. 주저 앉지 말고 쓰라는 심사위원님들의 격려와 믿음을 져버리지 않고, 입을 가진 사람의 책임감을 가지고 앞으로 열심히 쓰겠습니다.”
제52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자인 ‘품위 있는 삶’의 정소현 작가는 16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샤롯데스위트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품위 있는 삶’은 2008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양장 제본서 전기’로 등단했던 정 작가가 7년 만에 낸 신작이다. 흥미로운 반전과 날카로운 현실 감각을 선사하는 단편 여섯 편이 수록돼 있는 소설집이다. 심사위원들은 “치밀한 구성과 밀도 높은 문장 안에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해냈다”고 평가했다.
심사위원인 박혜진 문학평론가의 사회로 열린 이날 시상식에서 은희경 심사위원장은 “‘품위있는 삶’은 소설을 쓴다는 일이 얼마나 고된 노동인가를 실감하게 하는 작품집이었다”고 높게 평가했다. 또 “매 작품마다 고도로 치밀한 구성과 밀도 높은 문장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작가가 글쓰기에 들이는 공이 얼마나 클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은 위원장은 “작가가 그리고 있는 세계가 암담한 지옥의 형상을 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글쓰기에 투여됐을 ‘감정 비용’의 양으로는 이 작품집을 넘어서기 힘들어 보였다”고 상찬했다.
이날 축사는 서유미 작가가 맡았다. 서 작가는 “수상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주말 부부로 지내며 두 아이를 키우는, 그래서 소설을 위해 내어줄 시간이 부족했던 소설가 정소현의 밤이었다”면서 육아와 소설창작을 병행해야 했던 정 작가의 지난 시간을 언급하며 울먹였다. 그러면서 “사람이나 기회가 아니라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소설을 발표하는 일을 무서워한다는 점에, 그 뚝심과 완벽주의적인 면모에 압도당했다”고 말했다. 서 작가는 “앞으로 (정 작가가)또 얼마나 서늘하고 완벽한 얘기로 동료들을 장악할지 궁금하다”면서 응원을 보냈다.
이준희 한국일보 사장은 정 작가에게 상금 2,000만원과 상패를 전달했다. 시상식에는 서유미 윤고은 정세랑 전석순 한은형 김성중 강성은 최은영 작가, 문학동네 염현숙 대표, 문학과지성사 이광호 대표, 창비 황혜숙 편집국장 등이 참석했다. 한국일보사가 제정하고 GS가 후원하는 한국일보문학상은 1968년 제정돼 올해로 52회를 맞았다. 지난해 9월부터 올해 8월까지 출판된 소설ㆍ소설집 중에 수상작을 뽑았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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