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지표 일면만 내세운 자화자찬
끝없이 이어지는 기만적 경제 해석
국정 전반의 아전인수와 독선 끔찍
“경제에 망조가 들었다”는 항간의 푸념에 휩쓸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연말을 앞두고 여기저기서 나오는 불안한 지표들은 이래도 되나 싶은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다. 투자지표도 그 중 하나다. 더 심각한 건 이제 그런 빤한 지표까지 서슴없이 분칠하는 문재인 정부의 고질(痼疾)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최근 ‘외국인투자 5년 연속 200억불 조기 달성’이라는 보도자료를 냈다. 여기서 말하는 외국인투자는 ‘단타’로 들고나는 주식 투자자금 같은 게 아니다. 국내 기업 경영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며 지속적인 경제 관계를 유지할 목적으로 들어오는 외국인 직접투자(FDI)다. 요컨대 우리 국토 내에서 생산하고, 일자리를 만들며, 지속적으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데 쓰이는 ‘생산적 자본’을 해외로부터 많이 유치했다는 자화자찬인 셈이다.
하지만 산업부 발표는 당혹스럽다. 현 정부 들어 경제지표와 관련해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딴청과 왜곡, 아전인수식 해석을 또다시 대하는 듯한 매우 언짢은 기시감(旣視感) 때문이다. 외국인 FDI 지표는 국내 생산(적)투자 흐름의 한 단면일 뿐이다. 생산투자 상황의 전모를 보려면 FDI 유출입과, 그 결과인 전체 국내 투자 상황을 함께 봐야 할 것이다. 시야를 조정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우선 지난 2일까지 집계된 국내 유입 외국인 FDI액이 203억달러가 맞다 해도, 그걸 ‘달성’이라는 표현으로 포장하는 건 오해의 소지가 크다. 투자계획만으로 따진 ‘신고액’으로 쳐도 최근 5년 간 외국인 FDI 유입은 2015년 209억달러를 기점으로 올해 ‘203억 달러+∝’에 이르기까지 증가세가 미미해 거의 정체 상태로 보는 게 타당하다.
실제 투자가 이루어진 ‘도착액’ 기준으로 보면 상황은 더 명확해진다. 산업부는 지난해 외국인 FDI 유입액이 269억달러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고 했다. 하지만 도착액 기준으로 유엔무역개발협의회(UNCTAD)가 집계한 데 따르면 140억달러에 불과해 전년 180억 달러보다 오히려 줄었고, 베트남(160억 달러)에도 추월당했다. 외국인투자 활성화 정도를 나타내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FDI 유입액 비율도 우리나라가 0.9%였던 반면, 중국(1.0%) 싱가포르(22.4%) 인도(1.5%) 등 아시아 주요국이 모두 우리보다 높았고, 선진국 중에서도 미국(1.2%) 영국(2.3%), 프랑스(1.3%) 등 대부분 우리보다 외국인 FDI 유입이 활발했다.
외국인투자 정체보다 더 안 좋은 건 기업투자가 줄줄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상황이다. 지난해 7월 인도를 방문해 삼성전자 노이다 신(新)공장 준공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은 이재용 부회장에게 “한국에서도 더 많이 투자하고,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어 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하지만 자율주행 기술 합작 벤처 설립을 위해 미국 앱티브사와 4조8,000억원 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한 현대차부터, 제너럴모터스(GM)와 전기자동차 배터리 셀 합작 법인에 총 2조7,000억원의 투자계획을 밝힌 LG화학에 이르기까지 국내 대기업들의 ‘탈(脫)한국’ 투자는 줄을 잇고 있다. 이런 흐름은 지난해 해외 유출 FDI액이 유입액의 3배에 가까운 390억달러에 이르고, GDP 대비 비율도 2.4%에 달한 것에서도 뚜렷이 확인된다.
투자 유출입 불균형은 결국 국내 설비투자 지표에 수렴된다. 15일 통계청에 따르면 10월 설비투자(잠정)는 또 전년 동기 대비 4.8% 감소했다. 지난해 11월 이후 12개월째 연속 감소세다. 산업부는 이런 상황을 ‘외국인 FDI 5년 연속 200억불 조기 달성’이라는 화장품으로 분칠한 셈이다.
경제지표로 장난치지 말라는 지적을 되풀이하자는 게 아니다. 어느덧 고질이 된 ‘정부의 거짓말’이 국정 전반에 확산돼 불신이 심각하니, 각성하라는 얘기다. 특히 이런 식의 자기기만과 아전인수, 독선이 북한과 미ㆍ중ㆍ일을 상대로 한 한반도 평화외교에서도 횡행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정말 끔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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