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패율(惜敗率)제가 ‘4+1’ 협의체의 공직선거법 개정안 협상의 뇌관으로 떠올랐다. 석패율제는 지역구 선거에서 탈락한 국회의원 후보를 비례대표로 구제해 주는 제도로, 지역구에서 근소한 표차로 낙선한 후보 중 가장 득표율이 높은 후보가 혜택을 받는다. 지역 기반이 취약한 군소 정당에 상대적으로 유리한 제도다.
석패율제에 반대하는 더불어민주당은 ‘석패율제는 심상정 정의당 대표 맞춤형 제도’라는 프레임을 만들었다. 지역구에서 아깝게 패배하는 후보는 ‘인지도가 높은’ 현역 중진 의원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심 대표는 16일 “정의당에 대한 모욕”이라고 발끈했다. 민주당과 정의당이 석패율제를 고리로 치고 받으면서 선거법 개혁안 단일안 마련이 꼬였다.
‘4+1’(민주당ㆍ바른미래당ㆍ정의당ㆍ민주평화당+대안신당) 협의체는 올해 4월 선거제 개혁안(지역구 225석ㆍ비례대표 75석)을 마련하며 6개 권역에 2명씩 12명을 석패율 후보에 올리기로 했다. 이어 지역구ㆍ비례대표 비율을 250석ㆍ50석으로 조정하며 석패율 후보를 6명으로 줄였다. 그런 민주당이 돌연 ‘석패율제 폐지’를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지역구가 없어지는 의원을 석패율제로 구제하려고 했는데, 지역구 의석이 현행(253석)과 비슷하게 유지되면 경우 필요성이 없어진다”고 말했다. 정의당, 민주평화당, 대안신당 등이 석패율제 도입을 주장하는 이유는 ‘중진 특혜’ 때문이라는 게 민주당 시각이다. 이해찬 대표는 “중진들의 재선 보장용 석패율제를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며 “민주당은 ‘개혁’을 하려는 것이지 ‘개악’을 하려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
정의당은 강력 반발했다. 석패율제의 취지는 지역주의 완화와 양당제 극복인데,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폄훼했다는 주장을 폈다. 정의당 관계자는 “현행 소선거구제 지역구 선거에서는 1등에게 주는 표가 아니면 모두 사표(死票)가 된다”면서 “거대 양당 후보가 아니면 지역구에서 당선되기 힘든 한계를 석패율을 통해 극복하자는 것”이라고 했다. 심상정 대표는 “중진에게 석패율제가 적용되지 않도록 선거법에 명문화할 것을 제안한다”고도 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물러서지 않을 태세다. ‘정의당이 석패율제를 포기하지 않으면 선거법 협상은 없다’는 배수진을 쳤다. ‘선거제 개혁 무산’이라는 비판을 무릅쓰면서까지 군소정당을 압박해 석패율제 양보를 받아내려는 것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정의당 후보들이 석패율제를 믿고 대거 지역구에 출마하면 진보 진영 표가 갈라져 결국 자유한국당에 유리해진다”며 “문재인 정부 하반기의 안정적 국정운영을 위해서라도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다”고 했다. 당 지도부의 한 의원은 “석패율제엔 위헌 소지도 있다”며 “그렇게 개혁적 제도라면, 석패율제를 도입한 나라가 왜 거의 없겠느냐”고 했다.
비례대표 의석 한 개가 아쉬운 게 민주당의 본심일 수도 있다. 석패율제 6석은 ‘득표율’을 기준으로 배분되기 때문에 어떤 당이 차지할 지 예측이 불가능하다. 민주당 관계자는 “민주당이 전부 가져올 수도, 한국당이 전부 가져갈 수도 있다. 그야말로 깜깜이”라고 했다. 이에 민주당 지도부가 비례대표 전략 공천, 즉 ‘자기 공천’을 할 몫을 확보하기 위해 석패율제에 제동을 건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정지용 기자 cdragon2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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