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를] ‘페친은 수백인데 진짜 친구는 0’ 피상적 관계에 지친 2030 살롱이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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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페친은 수백인데 진짜 친구는 0’ 피상적 관계에 지친 2030 살롱이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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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8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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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셜살롱 문토(munto) 이미리 대표 인터뷰 

지난 10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문토 라운지'에서 만난 이미리 문토 대표가 미소를 짓고 있다. 지난해 소규모 모임 2개로 문을 연 문토는 어느덧 모임 50여개를 운영하는 소셜살롱의 대표주자로 성장했다. 박지윤 기자

매일 똑같은 공간을 오가고,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며, 적당히 예측 가능한 일들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모험’이나 ‘재미’를 추구하는 건 사치일지 모른다. 페이스북이 추천하는 친구는 수백 수천 명인데, 정작 소리 내어 이야기할 말동무 하나 없는 이 팍팍한 도시살이에 치이다 보면 문득 철저히 혼자라는 사실에 허망해지는 순간이 누구에게나 있다.

입사 4년 차를 맞이했던 2년 전의 이미리(31)씨도 그랬다. 집과 회사를 잇는 단순 궤도를 무한으로 반복하던 일상은 지루했고, 가까운 이들끼리 모여도 ‘신세 한탄’으로 시간만 죽이다 헤어지는 주말은 칙칙했다. ‘이렇게는 더 이상 물러설 수도 나아갈 수도 없다’는 자각이 들자 20대 초반의 한 시절이 휙 하고 스쳐 지나갔다. 취향도 마음도 잘 통하는 친구들끼리 모여 좋은 영화를 함께 보고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눴던 시간들이었다. ‘그런 시간이 다시 필요하다’는 생각에 무작정 살롱을 열었다. 2017년 3월 2개 모임에 스무 명 정도의 회원으로 시작한 소셜살롱(Social Salon) ‘문토(munto)’다. 2년이 넘게 지난 현재 문토는 50여개의 모임을 거느린 ‘살롱 문화’의 대표주자로 부상했다.

문토는 ‘묻고 답하다’란 뜻이다. 그 앞에 붙는 수식어 소셜살롱은 이씨가 직접 고안했다. ‘관계를 통해 서로의 생각과 경험의 지평을 넓혀 나가자’는 취지다. “처음엔 그냥 취미로, 재미 삼아 시작했어요. 원래 알던 사람들 말고 완전히 새로운 사람들과 교류해 보고 싶다는 생각에 여기저기 홍보를 했는데, 웬걸 다들 어떻게 알고 여기저기서 ‘함께하고 싶다’는 요청이 빗발쳤죠.”

‘이게 될까’ 걱정이 적지 않았는데 하면 할수록 ‘된다’는 생각이 굳어졌다. “마냥 삭막하기만 한 자기 계발도 싫고, 친한 친구들끼리 모여 각자의 신세에 대해 불평불만만 늘어놓는 것도 지겹지 않나요. 일상에 새로운 자극을 줄 수 있는 건 오직 새로운 관계뿐이다 싶었죠. 다들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예요.” 문토의 모임 수가 10개를 넘어가자 이씨는 마포구 서교동에 아예 공간 거점인 ‘문토 라운지’를 마련했다.

서울 마포구 서교동 소셜살롱 문토의 ‘생각하는 주방’ 참여자들이 음식을 만들고 있다. 문토 제공

단순히 사람과 사람을 잇는 선에서 그친 것은 아니다. 이씨는 살롱의 구성원들이 관계망을 통해 지적이고 생산적인 자극을 받는 것을 궁극적인 목표로 잡았다. “관계를 통해 자신의 취향을 넓혀 나가는 거죠. 거기서 더 나아가 ‘또 다른 나’를 발견하기도 하고요. 글을 쓰는 이미리, 요리하는 이미리, 재즈를 듣는 이미리, 우리에겐 그런 다양한 정체성이 필요해요.” 살롱 안에서 직업과 나이를 밝히지 않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문토에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무언가를 설명하면 그만이다. 그걸로 충분하다.

이씨는 오늘날이야말로 ‘취향’이 필요한 시대라 말한다. “취향은 하루아침에 얻어지지 않는, 그래서 하루아침에 잃을 수도 없는 스스로의 정체성이니까요. 과거엔 ‘어느 학교를 나왔냐, 어느 직장에 다니느냐’ 만으로 그 사람 자체를 설명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달라요. 더 이상 출신이 미래를 보장하지 않는 데다 모든 것이 불확실해졌어요. 조직 내에서의 유대관계도 헐거워지면서 개개인의 존재가 파편화됐죠. 이처럼 아무것도 미래를 담보해 주지 않는 시대일수록 스스로의 개성을 굳게 뿌리내려야 해요. 그래야 스스로를 잃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

변화무쌍한 세상일수록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에 즐거움을 느끼는지, 무엇에 깊이 매료되는지’를 정확히 알아야 스스로를 더 잘 지키고 사랑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는 문토의 살롱들이 ‘가치 있는 정보의 길라잡이’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정보 과잉 시대죠. 특정 분야에 관심이 생겨 좀 알아 나가고 싶어도 여기저기서 정보가 너무 많이 쏟아지니 그저 혼란스럽기만 하죠. 그래서 ‘잘 아는 이들’끼리 얼굴을 맞대고 소통하는 대화의 장이 중요한 거예요. 클래식 사조에 대해 주구장창 늘어놓기만 하는 인터넷 강의보단 ‘요즘 여성 첼리스트들은 왜 치마가 아니라 바지를 입는지’ 알려주는 시간이 더 재미있지 않겠어요.”

박지윤 기자 luce_jy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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