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천(린넨)으로 꽁꽁 싸진 채 딱딱하게 굳은 이집트 미라, 그 곁에 붉은 색으로 채색된 사람 모양 관(棺)이 놓였다. 무려 기원전 8~7세기에 제작된 미라와 관으로, ‘토티르데스’라는 사람의 것으로 전해진다.
신비로운 지점은 하나 더 있다. 관 안쪽에 새겨진 인물화다. 컴퓨터단층촬영(CT) 분석 결과 미라는 남성으로 분석되지만, 그림은 흰 옷을 입은 여성의 모습이다. 2,700여년 전의 유물이라고는 믿기 힘들 만큼 정교한 모양새로, 박물관은 고인의 죽음을 평온하게 인도하기 위한 여신을 그려 넣은 것으로 보고 있다.
토티르데스의 미라와 관을 포함한 이집트 유물 94점이 지난 16일부터 서울 용산동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시작됐다. 기존 아시아관의 전시 시설을 바꿔 ‘세계문화관’으로 개편하는 사업의 일환이다. 세계문화관은 이집트실과 중국실, 중앙아시아실, 인도동남아실 총 531개 유물로 구성되는데, 국내에서 이집트관이 상설 운영되는 건 처음이다.
이집트실은 미국 브루클린박물관과 공동으로 꾸려졌다. 브루클린박물관이 소장한 토티르데스 미라와 관뿐만 아니라 ‘왕의 머리’ 석상(프톨레마이오스 12세 추정), ‘람세스 2세 두상’, ‘따오기 관’ 등 기원전 이집트 유물 다수가 태평양을 건너 왔다. 2016년 한 차례 이들 유물이 전시된 적 있으나 전시 기간이 4개월로 짧아 아쉬움이 컸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최대한 많은 관람객이 전시품을 볼 수 있도록 이번 전시를 무료로 공개한다. 전시 기간도 2021년 11월 7일까지로 길다.
여러 전시품 중 따오기 관은 관람객 시선을 한 번에 사로잡는 독특한 유물이다. 따오기 몸통은 금으로, 얼굴과 다리는 은으로 제작돼 화려하게 빛나는 것은 물론, 따오기의 눈이나 다리 무늬는 살아있는 생물을 그대로 본 딴 듯 촘촘하게 표현됐다. 사람 못지 않게 동물을 소중하게 대한 이집트인들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 람세스 2세 두상도 붉은색과 노란색의 안료가 그대로 남아 있을 정도로 보존 상태가 좋다.
이집트실 외에도 중앙아시아실의 ‘창조신 복희와 여와’ 그림(투루판 아스타나ㆍ7세기), 인도동남아실의 ‘간다라 보살’ 석상(간다라ㆍ2~3세기) 등 세계 곳곳의 유물도 한자리에서 확인 가능하다. 윤상덕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은 “2년 뒤에는 브루클린박물관과 아직 국내에 제대로 소개된 적 없는 메소포타미아 문명 전시를 준비할 예정”이라며 “이후 자주 접하지 못한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아메리카 대륙, 그리고 이슬람 문화에 대한 전시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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