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 후기낭만주의 작가 겸 작곡가 에른스트 호프만(Ernst Theodor Wilhelm Hoffmann)의 단편 ‘호두까기 인형과 생쥐 대왕’에서 영감을 받아 1892년 차이코프스키가 발레 음악 ‘호두까기 인형(The Nutcracker)’을 작곡했고, 그해 12월 18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 극장에서 발레 ‘호두까기 인형’이 초연됐다. 레프 이바도프가 안무를 맡은 발레는, 음악의 호평과 달리 별 반향을 얻지 못했다. 알려진 바 연출도 춤도 그리 인상적이지 못했다고 한다.
오늘날 ‘호두까기 인형’은 12월을 상징하는 발레 레퍼토리로 거의 전 세계 발레 극장에서 공연된다. 그 공은 마린스키 극장 출신 안무가로 신고전주의 발레의 창시자라 불리는 조지 발란신(George Balanchine, 1904~1983)의 몫이라 해야 한다.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와 뉴욕시티발레단의 공동 설립자 겸 예술감독이던 그는 발레단 재정난 타개책의 일환으로 1954년 호두까기 인형을 무대에 올렸고 대성황을 거뒀다. 전해지는 말로는 자녀가 있는 뉴욕의 중산층 가정치고 그 발레 공연을 못 본 집은 연말 파티에서 주눅이 들 정도였다고 한다.
그 전통의 뉴욕시티발레단이 올 시즌 ‘호두까기 인형’의 주인공인 클라라(마리) 역에 아메리칸발레학교 학생인 아프리카계 미국인 11세 소녀 샬롯 네브레스(Charlotte Nebres)를 뽑았다. 샬롯의 상대역인 왕자 역은 중국계 혼혈인 태너 쿼크(Tanner Quirk)가 맡았고, 클라라-왕자의 세컨 배역에는 한국-그리스계인 소피아 토모포울러스(Sophia Thomopoulos)와 남아시아계 카이 미스라스톤(Kai Misra-Stone)이 각각 캐스팅됐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발레리나 미스티 코프랜드(Misty Copeland)가 아메리칸 발레시어터 75년 역사상 첫 흑인 프리마 발레리나에 발탁된 2015년, 만 6세의 네브레스는 코프랜드의 춤을 보며 큰 힘을 얻었다고 한다. 그는 “무척 놀라웠다. 코프랜드는 나와 같은 피부의 모든 사람을 대표했다”고 말한 뒤 자기가 그랬듯 “객석에서 나 같은 작은 아이들이 우리를 보며 ‘야, 나도 할 수 있겠는걸’ 하고 말하게 될 것”이라고도 했다. 발레 ‘호두까기 인형’이 127년 만에 그렇게 멋진 새로운 역사를 썼다.
최윤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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