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7월부터 시행된 일본 정부의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 문제를 논의하는 양국 간 수출 관리 정책대화가 16일 3년 6개월 만에 재개됐다. 화이트리스트(수출우대심사국ㆍ현 그룹A) 제외 등의 수출 규제 철회를 요구하는 한국 입장에 맞서 일본 측은 대화 재개가 규제 철회 또는 완화로 직결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다만 이달 말 중국 청두(成都)에서 한일 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에서 열리는 것으로, 양측이 어느 정도 입장 차이를 좁혀 관계 개선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느냐가 관건으로 꼽히고 있다.
이날 오전부터 도쿄(東京) 경제산업성에서 열린 정책대화에는 양측에서 각각 8명씩 참석했고, 이호현 산업통산자원부 무역정책국장과 이다 요이치(飯田陽一) 경제산업성 무역관리부장이 양국 수석대표로 나섰다.
일본 정부는 7월 대법원 강제동원 판결에 대한 보복 조치로서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3개 품목의 한국 수출을 포괄허가에서 개별허가로 전환했고, 8월 엔 화이트 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했다. 이 같은 조치가 취해진 배경에 대해선 △양국 간 정책대화가 한동안 열리지 않아 신뢰관계 훼손 △재래식 무기에 전용될 수 있는 물자 수출을 제한하는 캐치올 규제 미비 △수출심사·관리 인원 등 체제의 취약성(부족)을 들었다. 그러면서 일본의 수출 규제는 한국의 무역관리 체제 운용 상황에 맞춰 자국이 결정할 문제라고 주장하고, 한국과 협의할 의제는 아니라고 강조해 왔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한국 측의 수출 규제 철회 요구에 대해 “정책대화의 결과는 예단할 수 없지만, 수출 관리는 국제적 책무로서 적절히 시행한다는 관점에서 우리나라로서는 국내 기업과 수출 상대국의 수출 관리를 종합적으로 평가해 운용한다는 방침”이라며 “상대국과 협의해서 결정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고 밝혔다.
한국 측 대표인 이호현 국장은 전날 도쿄 하네다(羽田)공항에 도착해 “한국의 수출관리 제도와 운영이 정상적이고 효과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설명하겠다”며 이번 대화를 통해 한국의 수출 관리 제도에 대한 일본의 불신을 해소하는 데 주력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도쿄의 외교소식통은 “수출 규제는 강제동원 배상판결,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ㆍ지소미아) 등과 엮여 있는 문제여서 대화 재개만으로 가시적인 성과를 도출하기엔 다소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이번 정책대화는 지난달 22일 한국 정부의 지소미아 종료 유예 발표에 대한 후속조치다.
다만 이날 의제가 △민감 기술 통제와 관련한 현황과 도전 △양국의 수출 통제 시스템과 운용 △향후 추진방향 등으로 발표된 만큼 양국 간 대화를 거듭하면서 상대에 대한 오해를 풀고 문제점에 대한 대응 조치가 이뤄질 경우 점진적으로 규제 완화가 이뤄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가지야마 히로시(梶山弘志) 일본 경제산업장관도 13일 “정책대화에서 문제점이 하나하나 해소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렇다면 원래대로 돌아갈 가능성도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한편 이날 회의장 분위기는 수출 규제 직후인 지난 7월 12일 양국 무역관리 실무자 대화 때와 대조적이었다. 이날 대화는 경제산업장관도 사용하는 특별회의실에서 개최됐고 회의용 마이크가 설치된 대형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양국 대표단을 위한 온수포트와 물, 커피 등도 마련해 두었다. 회담에 앞서 다소 긴장감이 흘렀지만 이전보다 격식을 갖춘 분위기였다.
일본 대표단은 회의 시작 6분 전에 입장해 선 채로 한국 대표단을 기다렸다. 한국 대표단이 입장하자 일본 측 대표인 이다 부장이 한국 측 대표인 이 국장과 가볍게 웃으며 악수했다. 이 국장이 영어로 “굿모닝”이라고 하자, 이다 부장 “웰컴, 플리즈”라고 인사를 나누며 자리를 안내했다. 한국 대표단이 자리에 앉은 다음에야 일본 대표단이 착석했다.
지난 7월엔 양측은 인사나 악수조차 하지 않았다. 일본에선 회의 성격을 ‘설명회’로 낮추기 위해 간이의자와 이동식 테이블이 쌓여 있는 허름한 장소를 택했다. 회의장 내 화이트보드에는 ‘수출관리에 관한 사무적 설명회’라고 인쇄된 A4용지가 붙어 있는 등 의도적인 홀대가 눈에 띄었다. 당시 먼저 입장해 있던 일본 실무자들은 한국 실무자들이 들어올 때에도 정면을 응시한 채 자리에 앉아 냉랭한 태도를 보였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em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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