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헤이그 국제사법재판소에서 열린 로힝야족 학살 관련 재판에서 인종 청소 혐의를 부인한 아웅산 수치 미얀마 국가자문역이 14일 귀국한 가운데, 환영 인파가 수도 네피도 국제공항 인근에서 그를 맞고 있다. 네피도=AP 연합뉴스

14일 미얀마 수도 네피도 거리는 미얀마 국기를 든 수천명의 인파로 가득했다. 최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국제사법재판소(ICJ) 심리에 피고로 참석한 뒤 돌아온 아웅산 수치 미얀마 국가자문역을 환영하는 물결이었다. 미얀마 군경이 로힝야족을 상대로 ‘인종청소’를 자행했다는 국제사회의 비판에 대해 ICJ 법정에서 강력히 반발하며 재판부에 ‘사건 기각’을 촉구하자, 미얀마 국내에서 뜨거운 호응을 받은 것이다. 내년 11월 총선거를 앞둔 가운데, 로힝야족에 확실히 등을 돌리고 군부와 반(反)로힝야 정서를 끌어안으려는 그의 전략이 제대로 먹혔다는 방증으로 결국 로힝야 사태 해결은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5일 현지 소식통과 방콕포스트ㆍAFP통신 등 외신들은 수치 자문역이 국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귀국했다고 일제히 전했다. 그는 자신의 검정색 벤츠 창문을 내린 뒤, 시민들을 향해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어 보였다. 네피도 국제공항에선 마중 나온 측근 관료들과 밝은 미소를 띄운 채 담소를 나누며 걷는 모습도 포착됐다.

앞서 수치 자문역은 지난 11~13일 ICJ에서 열린 ‘로힝야족 집단학살’ 재판 심리에서 “무력 사용이 방어 차원이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 “미얀마 사법부가 먼저 판단할 수 있어야 하는 만큼, 이번 사건을 ICJ 재판부 명부에서 삭제할 것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네덜란드 헤이그 국제사법재판소에서 열린 로힝야족 학살 관련 재판에 참석한 뒤 14일 미얀마 수도 네피도에 돌아온 아웅산 수치 국가자문역이 차량에 탑승한 채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네피도=AP 연합뉴스

익명을 요구한 현지 소식통은 “수치 여사가 집권하면 미얀마가 달라질 것으로 기대했던 많은 사람들의 실망이 이어지고 있다”며 “국제사회의 비판에 귀를 닫고 미얀마 군부를 직접 변호한 것은 수치 자문역이 1년도 채 남지 않은 선거에 본격 대비하고 나선 것”이라고 전했다. 이 소식통은 2015년 선거 당시 수치 자문역을 지지했던 인물이다.

실제로 미얀마 민주화의 아이콘으로 불리며 노벨평화상까지 수상한 수치 자문역 입지는 안팎에서 계속 좁아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군부의 유혈탄압 외면으로 국제적 지지 기반을 잃은 데 이어, 작년 말 13개 선거구에서 실시된 보궐선거에선 집권여당인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 장악하고 있던 4곳을 군부 측 정당과 소수정당에 내주며 고배를 마셔야 했다. 평화 정착을 위한 정부의 노력이 소수민족들을 만족시키지 못한 데 따른 결과였던 만큼, 내년 선거에서 NLD의 선전을 점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군부의 재집권 가능성이 높아지자 현지 진출 기업들은 군부에도 각별한 신경을 쓰고 있다.

또, 유럽연합(EU)과 미국 등 서방의 경제 제재는 미얀마에 대한 일반특혜관세(EBA) 축소 우려로 이어지며 수치 자문역을 더욱 곤란에 빠트리고 있다. 수치 자문역도 이번 재판에서 패배할 경우, 자국에 대한 경제 제재가 확대될 가능성이 있는 점을 고려해 직접 법정 출두를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세안 외교가 관계자는 “‘1국가 2체제’로 불릴 정도로 여전히 강력한 권한을 행사하고 있는 군부와 각을 세우는 모양새로는 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는 계산이 작용하고 있다”며 “개헌 등 점진적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선 군부의 협조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미얀마의 군 통수권은 대통령이 아닌 군총사령관이 갖고 있고, 국회의원 4분의 1은 총사령관이 직접 임명한다.

선거 승리를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다 하더라도, 수치 자문역이 로힝야족 사태에 완전히 등을 돌리는 입장을 취함으로써 로힝야족 사태도 더욱 꼬이게 됐다. 난민 송환을 위한 논의가 중단되자 방글라데시 정부는 일부 난민들을 자국 내 다른 섬에 옮기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방글라데시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김해성 목사는 “로힝야족 난민촌에서 무기가 발견되는가 하면, 난민들이 대규모 시위를 벌이는 등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며 “방글라데시 공무원들도 난민들에 대해 분노를 갖고 업무를 보는 중”이라고 전했다.

호찌민=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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