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경 LG 명예회장이 14일 94세의 일기로 타계했다. 고인은 1995년 장남인 고 구본무 회장에게 회장직을 승계한 뒤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사회사업과 농사에 전념하며 소탈한 말년을 보냈다. 하지만 굴지의 기업인으로서, 모범적인 삶의 스타일리스트로서 고인이 남긴 족적은 크다. 고인은 1969년 LG 2대 총수로 취임해 95년까지 우리 경제의 ‘한강의 기적’을 일궜다. 고 이병철, 정주영 회장 등과 어깨를 견주며 국내 전자ㆍ화학산업을 세계적 수준으로 도약시켰다.
흔히 호방하고 박진감 넘치는 현대, 치밀하고 세련된 삼성이라고 한다. LG는 ‘견고하고 내실 있는’ 기업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도약기 25년간 LG를 이끈 고인의 견실한 인품이 LG의 기업 DNA로 승화된 셈이다. 정련된 유교적 가풍 속에서 자라며 공책 한 권, 연필 한 자루 허투루 쓰지 않는 검박함을 체득했고, 그게 실사구시(實事求是)를 추구하면서도 외형보다는 실질을 중시하는 기업정신을 일구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고인은 1950년 입사 이래 현장에서 경영을 터득했다. ‘럭키크림’ 생산을 맡아 가마솥에 직접 원료를 부어 제품을 만들고, 판매현장을 뛰었다. 크림통 뚜껑이 자주 깨지자, 플라스틱 용기 사출을 연구해 나중에 LG 가전제품의 견고한 구조를 구축하는 데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기업인으로서의 신념을 ‘강토소국 기술대국(땅은 작아도 기술만은 대국인 나라)’으로 표방하며 끝없는 혁신에 나섰다. 그런 기업가 정신이 당초 락희화학과 럭키금성을 지금의 글로벌 LG로 키운 원동력이다.
자리에 나아가 치열하되, 물러나 소탈한 자연인으로서 품격 있는 말년을 이룬 고인의 타계는 최근 고 김우중 회장의 영면과 겹쳐지며 ‘경제 거인’들을 보내는 아쉬움을 더하게 한다. 하지만 차세대를 향한 삼성, 현대의 도전과 마찬가지로 LG도 이제 전자ㆍ화학을 넘어 정보통신(ICT) 및 부품소재 글로벌기업으로 새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불확실한 경제 여건 속에서도 경제 거인들의 발자취가 한국경제의 차세대 성장동력 개발로 부단히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견실한 혁신’으로 요약되는 고인의 실사구시 기업가 정신의 계승이 더욱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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