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금융그룹인 신한금융의 조용병(62) 회장이 13일 차기 회장으로 내정되며 사실상 연임에 성공했다. 채용비리에 연루돼 재판을 받고 있다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그룹을 안정적으로 이끌며 업계 1위로 올린 성과를 인정받은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다음달에 있을 1심 판결은 조 회장의 새로운 임기 출발에 있어 마지막 고비가 될 전망이다.
신한금융 지배구조및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는 13일 서울 중구 본사에서 회의를 열어 조 회장과 진옥동 신한은행장, 임영진 신한카드 사장, 민정기 전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 사장, 위성호 전 신한은행장 등 5명의 후보를 면접한 뒤 만장일치로 조 회장을 단독 후보로 추천해 이사회 의결을 받았다. 조 회장은 내년 3월 정기 주주총회의 승인을 거쳐 두 번째 3년 임기를 시작한다.
1984년 신한은행에 입행한 뒤 인사, 기획, 글로벌, 리테일 등 은행 주요 보직을 거쳐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 사장, 신한은행장 등을 지낸 조 회장의 연임 성공 요인으론 탁월한 경영 성과가 첫손에 꼽힌다. 회추위는 “지난 3년간 오렌지라이프, 아시아신탁 인수 등을 통해 신한금융을 업계 1위로 이끌면서 경영 능력을 인정받은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밝혔다.
회추위는 지난달 15일 처음 소집됐을 때부터 조 회장 재판과 관련한 이른바 ‘법률리스크’도 충분히 고려했다고 밝혔다. 이만우 회추위원장은 “상법상 이사들이 언제든 대표이사 유고(법정구속) 시 해임할 수 있고 남은 이사들도 충분한 권한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되지 않을 것”이라며 “직무대행 시 1순위는 비상임이사인 은행장이고, 임시주총을 소집해서 차기 대표이사를 선임하는 절차도 이사회가 관장한다”고 밝혔다. 신한금융 관계자는 “경영 실적이 기대에 못 미쳤다면 법률리스크가 큰 부담이 됐겠지만, 성과가 워낙 좋았던 데다가 불구속으로 재판 받으면서도 차질 없이 조직을 이끌어온 점이 반영된 것 같다”고 말했다.
신한금융 측은 회추위 일정이 조 회장 1심 판결에 앞서 서둘러 진행된 것 아니냐는 지적에 “순전히 자회사 최고경영자(CEO)를 선임하는 자회사경영위원회(자경위) 일정에 맞춘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말 직원 인사가 있는 점을 고려하면 이달 중순까지는 자회사 CEO를 선정해야 하는데, 물러나는 회장이 아니라 차기 회장이 자경위를 주재할 수 있도록 회장 후보 결정 시기를 조정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조 회장의 1심 재판 결과는 여전히 상황을 바꿀 수 있는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일각에선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는 무죄 추정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지만, 중대한 유죄 선고가 나올 경우엔 사퇴 압력이 적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재판 결과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법정 구속이라는 최악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며 “무죄를 비롯해 그 밖의 결과가 나온다면 3심까지 갈 확률이 높은 터라 회장직 수행에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 회장이 연임 임기 동안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만만치 않다. 저금리와 저성장 기조 속에 금융권 영업 환경이 더욱 열악해지고 있는 한편으로, 핀테크 기업 등이 참여하는 오픈뱅킹과 인터넷전문은행 추가 인가 등 디지털 부문의 경쟁은 치열해지고 있다.
조 회장은 “3년간 회장으로 많이 경험했지만, 상황이 복잡하고 불확실성이 많기 때문에 기본에서 다시 출발하겠다”며 “앞으로 고객ㆍ사회ㆍ주주로부터 신뢰받는 금융, 개방을 통한 경쟁력 제고, 끊임없는 조직 혁신 등 세 가지 축으로 그룹 경영을 해나가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박민식 기자 bemyself@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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