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에서는 박스같이 부피가 큰 쓰레기는 직접 지역의 리사이클링 센터에 가지고 가서 버려야 한다. 오슬로에서 내가 사는 지역에 있는 리사이클링 센터는 마치 고속버스 터미널같이 생겼다. 엄청나게 큰 건물 안으로 차를 운전해 들어가서 버리는 물품별로 분리된 각각의 스테이션마다 멈춰서 쓰레기를 버리고 가는 시스템이다. 물론 한국에서처럼 딱지를 사다 붙여서 아파트의 재활용 공간에 내놓는 거에 비한다면 엄청 불편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고, 대부분의 사람이 이 규칙을 잘 지킨다는 사실에 매번 나는 감동한다.
노르웨이는 인피니텀(Infinitum)이라는 조직을 통해 세계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플라스틱을 재활용하는 프로세스를 만든 나라로도 유명하다. 생산된 플라스틱의 97%가 재활용된다고 한다. 특히 92%의 플라스틱병은 바로 또다시 플라스틱병이 되고, 최대 50회까지 재활용된다고 한다. 많이 알려진 이야기인데, 노르웨이를 포함한 북유럽 국가에서는 플라스틱이나 캔에 든 물건을 살 때 병 값이 따로 매겨진다. 그리고 웬만한 슈퍼마켓에는 이를 돌려주면 돈을 주는 기계가 설치되어 있어, 장 보러 갈 때 모아놓은 병을 가지고 간다. 병에 따라 다르지만, 한국 돈으로 대체로 300원에서 500원 사이다. 돈으로 돌려받아서 바로 슈퍼마켓에서 쓸 수도 있고, 복권을 사는 행위를 통해 기부를 할 수도 있다.
모든 사람이 다 알고 있고, 많이 듣는 이야기를 꺼낸 이유가 있다. 나는 재활용 그리고 환경을 생각할 때 무엇을 만들고 무엇을 쓰느냐보다 어떻게 쓰고 어떻게 버리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한 예를 들어보자. 요즘 플라스틱 빨대를 없애고, 종이 빨대나 심지어 파스타 빨대까지 등장했다. 하지만 플라스틱 빨대를 쓰고 이를 잘 수거할 수 있다면, 문제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쉬워진다. 다른 예를 하나만 더 들어보겠다. 한국에서는 플라스틱병에 든 물을 자주 산다. 어느 한 업체가 자기네 플라스틱병 뚜껑은 다른 브랜드의 플라스틱병의 뚜껑보다 훨씬 적은 플라스틱을 쓴다고 엄청 자랑하는 광고를 보았다. 그렇다. 병의 크기를 줄일 수는 없으니 플라스틱병의 뚜껑 두께를 약 1~2㎜ 줄인 것이다. 이 어이없는 광고 역시 플라스틱병을 잘 수거하고 다시 잘 사용한다면 아마 할 수 없을 것이다. 뱃속에 플라스틱을 잔뜩 넣고 살다 죽은 고래도 마찬가지다. 인간이 함부로 버리지 않았다면 이런 일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쓰고 나서 어떻게 버리느냐는 문제 전에는 먼저 충족되어야 하는 것이 있다고도 생각한다. 아마 많은 독자가 미디어에서 쓰레기 더미가 쌓여 있는 해변이나 하천 등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런 사진이나 영상을 보면서 어느 나라의 소식이었는지 기억해보길 바란다. 태풍 등의 자연재해로 인해 쓰레기가 떠밀려오지 않는 한, 아마도 소위 별로 잘살지 않는 나라들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환경 문제는 생존과 직접 연결되어 있으며, 한 사람이 혹은 한 국가가 홀로 나서서 환경을 보호할 수 없다는 데 대부분의 사람이 동의한다. 하지만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람들이 환경 문제를 염두에 두고 행동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었기에 1970,80년대보다는 오늘날 공원 등과 같은 녹색 지대를 대한민국에서 더 많이 찾아볼 수 있게 되었고, 또 중국 역시 최근에 와서야 환경 문제를 도모하는 정책 등을 펴기 시작할 수 있었다. 16세의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스웨덴에서 나올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어떻게 생각하면 슬픈 결론이지만, 모든 사람이 웬만큼 잘사는 것은 많은 일을 쉽게 만든다. 심지어는 환경을 보호하는 일까지 말이다.
영주 닐슨 성균관대 경영전문대학원 GSB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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