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클럽, 주한 미영 대사관 외교문서 공개
신군부 ‘北 남침 첩보’ 부각 미 설득하려 해
한미클럽이 12일 1979년 10ㆍ26 사태와 12ㆍ12 군사반란 40년을 맞아 공개한 주한 미영 대사관의 외교문서. 연합뉴스

미국이 1979년 12ㆍ12 군사반란을 처음부터 사실상 쿠데타로 규정한 정황을 엿볼 수 있는 외교문서가 공개됐다.

한미클럽은 12일(현지시간) 10ㆍ26 사태와 12ㆍ12 40주년을 맞아 미 존스홉킨스대와 함께 당시 급박한 상황을 기록한 주한 미영 대사관 외교문서 500여쪽을 공개했다. 이들 문서에는 10월 26일 박정희 전 대통령 시해와 이어진 전두환 신군부의 12ㆍ12 군사반란 등 격동의 시기에 한국 상황을 예의 주시하던 양국 대사관의 움직임이 담겨 있다. 당시 미국이 주미 한국대사를 불러 신군부를 압박하자 한국 정부는 북한의 남침 가능성을 부각해 미국을 설득하려 한 것으로 나타났다.

10·26이 터지자 주한 영국 대사는 사흘 뒤 윌리엄 글라이스틴 미국 대사와 나눈 대화를 본국에 전문으로 보냈다. 전문에서 글라이스틴 대사는 27일 박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군사 쿠데타가 틀림없다고 생각했고, 이 소식을 전한 이가 한국군 메신저여서 그런 느낌을 확신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을 시해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군을 포함한 외부 세력과 모의했다는 증거가 없어 29일 시점에는 일종의 ‘궁정혁명(palace revolution)’ 쪽으로 정리했다. 또 김재규는 박 전 대통령과 심복인 차지철 청와대 경호실장을 제거하면 군과 민간 거물들이 그를 위해 모여들 것으로 기대했다고 분석했다. 이어 글라이스틴 대사는 영국 대사에게 북한은 남한의 비상대기상태에 대응해 천천히 반응을 늘리는 수준이었다고 전했다. 공중조기경보관제기(AWACS) 두 대와 항공기동부대의 한반도 배치 사실도 알렸다.

주한 미국대사관은 12·12 당일 ‘한국 쿠데타’라는 제목의 전문을 본국에 발송했다. “우리는 쿠데타로 부르지 않도록 신경 쓰지만 군사 쿠데타의 모든 성격을 띠고 있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또 “권력 통제력은 기무사령부 사령관이자 강경파로 알려진 전두환의 수중에 있다는 것이 명확하다”며 미 국무부 배포용 성명을 첨부했다.

같은 날 다른 전문에서는 톤을 낮추는 수정 성명을 요청하기도 했다. 반란자(insurgent)들이 자신들의 요구를 군 인사 변화에 국한하는 데 동의했다는 것이다. 신군부가 미측에 권력 찬탈이 아니라 군부 개혁을 군사 행동 목적이라고 설명한 것으로 유추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또 다른 전문에서는 리처드 홀브룩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김용미 한국대사를 불러 이번 일이 질서 있는 정치적 변화 과정에 역행하는 일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당시 한국 정부는 12·12 후 북한의 무력 남침을 우려하는 정보 분석 문건을 제시하며 미국을 설득하려 했다. 쿠데타 직후 미측에 전달한 ‘북괴의 무력남침 가능성에 대한 종합 분석’이라는 정부 문건을 보면 북한의 다양한 남침 시나리오 첩보를 소개한 내용이 포함됐다. 북한이 12·12를 결정적인 남침 기회로 오판할 가능성이 짙다거나 남침 계획 시기를 10ㆍ26 때문에 1980년 가을에서 앞당기려 한다는 주장 등이다.

미국은 당시 야권 지도자이던 김영삼 신민당 총재에게도 큰 관심을 보였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12월 20일 김 총재를 면담한 내용을 본국에 보고했는데, 그는 최규하 대통령이 1980년 헌법 개정 후 1981년 5, 6월쯤 선거를 치르는 정치적 시간표를 갖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면서 김 총재는 이런 긴 시간표는 재앙을 초래한다며 조기선거를 주장했다고 한다. 그러자 글라이스틴 대사는 김 총재에게 미국은 민간정부를 지지한다고 말했다.

미 대사관은 앞서 박정희 정권을 비판하는 김 총재의 9월 16일자 뉴욕타임스 인터뷰와 이로 인한 의원직 제명도 중요 이슈로 봤다. 미 대사관은 전문에서 “김영삼 제명은 언론의 집중 보도를 받았지만 지금까지 상황은 조용해 보인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김이삭 기자 hir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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