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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폭설을 언제 치울 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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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폭설을 언제 치울 셈인가

입력
2019.12.13 18:00
수정
2019.12.13 18:08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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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정책협의, 하명수사 등 지방선거 의혹

눈 그칠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송 시장의 회피

광역단체장으로 책임 있는 처신인지 자문해야

지난달 13일 울산시청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울산 수소 그린모빌리티 규제자유특구 지정 관련 기자회견에 참석한 송철호 시장(왼쪽)과 송병기 부시장.
지난달 13일 울산시청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울산 수소 그린모빌리티 규제자유특구 지정 관련 기자회견에 참석한 송철호 시장(왼쪽)과 송병기 부시장.

군대를 제대한 웬만한 전역병치고 눈 치우는 고역을 겪지 않은 이는 드물 것이다. 30분, 1시간 간격으로 쌓이는 눈을 치우고, 또 치우는 고된 사역에 원망의 눈길로 흐린 하늘을 쳐다보던 군대 경험 말이다. 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온몸에선 땀이 흐르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신체적 반응과 달리 ‘이 무슨 어리석은 일인가’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이율배반적인 경험 말이다. 흔히 말하는 ‘까라면 까는’ 군대 속성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 눈 치우는 작업일 것이다.

하지만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고, 상황에 대비해야 하는 군대 속성상 아무리 폭설이 내려도 치우고 또 치우는 일은 일견 불합리하게 보여도 해야 할 일일 것이다. 눈을 내버려뒀다가 상황이 발생해 차량을 움직이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는 경우는 군대에서 용납될 수 없다.

김기현 전 울산시장과 관련한 청와대 하명수사 의혹과 지난해 지방선거 전 유력한 여당 후보군이었던 송 시장 측과 청와대 행정관의 정책 협의 의혹과 관련해 송철호 울산시장이 지난 11일 눈 치우는 작업을 예로 들길래 적절한 자세인지 의문이 든 군대 생각이다.

송 시장은 “말단 졸병 생활을 할 때 최전방에서 깨달은 지혜가 있다”며 “눈이 펑펑 내릴 때는 그것을 쓸어봐야 소용이 없다”고 했다. 하명수사 의혹 등과 관련해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언론의 의혹 제기, 야당 공세, 검찰 수사를 ‘펑펑 쏟아지는 눈’에 빗댄 것이다. “때를 기다리다가 시민에게 속 시원히 말씀드릴 날이 올 것”이라고 했다.

이게 눈 치우는 작업에 빗댈 일인지 모르겠다. 국민 모두가 주지하다시피 선거는 민주주의 근간을 이루는 핵심 절차다. 과거 권력과 관의 선거 개입과 그 폐해를 경험해온 바탕에서 오늘날 공직선거법은 선거 공정성 유지를 위해 매우 엄격하고 까다로운 조건을 부여하고 있고, 이로 인해 크고 작은 선거에서 적지 않은 당선자가 벌금 100만원 이상을 확정받아 당선자 지위를 박탈당하고 있다. 하물며 권력 기관이나 관의 개입은 선거판을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만드는 중대 사안이다. 국헌 문란이라는 말도 그리 심각한 표현으로 들리지 않을 정도로 금기시되고, 금기시돼야 할 위법 행위다.

쏟아지는 울산의 지방선거 부정 의혹 가운데는 송 시장이 개입됐는지 수사를 통해 규명돼야 할 사안도 있지만, 직접 개입된 사안도 있다. 지방선거를 5개월 앞둔 지난해 1월 청와대와 당시 여당 후보로 출마 예정이었던 송 시장 측의 정책 협의 의혹이다. 상대당인 자유한국당은 당시 송 시장과 측근인 송병기 부시장, 청와대 균형발전비서관실 행정관의 만남을 걸어 송 시장을 공직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공공병원 설립 계획 등이 논의의 주 내용으로 알려졌는데, 이 협의는 선거 기획과 관련한 청와대의 관여나 공약 조율, 공무상 기밀 누설,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위반, 송 시장의 공범 여부가 쟁점이다.

사안에 위법성이 있다 해도 그가 당시 공무원이 아닌 민간인 신분이어서 법적 책임을 질 대상이 되는지 불확실하지만, 출마 예정인 여당 유력인사가 지방선거를 앞두고 청와대 인사에게 정책 설명을 하는 것 자체가 선거 공정성 면에서 부적절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더욱이 김기현 전 시장 비리 의혹과 관련한 최초 경찰 제보자가 송 시장의 측근인 송병기 울산 부시장으로 드러난 바에야 법 위반 여부와 별개로 선거 공정성에 대한 의심은 짙어지고 있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송 시장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는 듯 눈이 그칠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자세다. 야당의 정치 공세, 언론의 분별 없는 의혹 제기, 검찰의 정치 행위로 보는 것일까. 송 시장이 국가 녹을 먹고 있는 신분에 있다면, 대통령의 오랜 정치적 동지라면 적절한 수준에서 당시 일을 해명하고, 사정을 밝히는 게 책임 있는 처신이다. 선거 공정성을 의심받는 상황에서 광역단체장이 시정의 신뢰성을 위해서라도 울산 시민에게 적절히 답을 할 의무가 있고, 시민은 들을 권리가 있다.

정진황 뉴스1부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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