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 15일 방한해 주한미군 위문 명분 DMZ 방문 유력
北이 설정한 ‘연말시한’ 앞두고 트럼프 메시지 주목
북한이 제시한 북미 협상 ‘연말 시한’이 점차 다가오는 가운데 미국 북핵 협상팀을 이끄는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한국을 찾는다. “어리석은 짓으로 우리가 어느 길을 갈지 결심하게 해줬다”며 미국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 소집에 북한이 강하게 반발하면서 판문점 북미 접촉은 불발될 가능성이 커졌다.
12일 외교소식통에 따르면 한미 외교 당국은 비건 대표의 15일 방한 일정을 최종 조율 중이다. 비건 대표는 먼저 카운터파트인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및 청와대 관계자 등을 만날 예정이다.
관심사는 방한 기간 북측과의 접촉 성사 여부다. 국무부 부장관 승진을 앞둔 비건 대표는 주한미군 위문 등을 명분으로 비무장지대(DMZ)를 방문할 가능성이 크다. 때문에 북한이 호응한다면 10월 스톡홀름 회동 이후 중단된 실무협상이 판문점에서 재개될 수도 있다는 기대도 일각에서 나왔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다시 회의론이 커지는 분위기다. 이날 북한이 외무성 대변인 명의의 담화를 통해 미국을 비난하고 나서면서다. 대변인은 “우리는 지금과 같이 예민한 때에 미국이 우리 문제를 논의하는 유엔안전보장이사회 공개 회의를 주도하면서 대조선(대북) 압박 분위기를 고취한 데 대하여 절대로 묵과하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은 이번 회의 소집을 계기로 도끼로 제 발등을 찍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짓을 하였으며 우리로 하여금 어느 길을 택할 것인가에 대한 명백한 결심을 내리게 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다”고 말했다. 대미 협상을 포기하고 강경 노선을 가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미국은 11일(현지시간) 소집한 유엔 안보리 회의에서 대북 협상에 유연하게 나설 준비가 돼 있다고 북한을 달래면서도 북한이 적대와 위협을 멀리하지 않을 경우 안보리가 응분의 행동을 할 수 있게 준비해야 한다고 국제사회에 촉구하며 대북 압박 기조를 바꾸지 않았다.
앞으로 10여일은 북미 협상의 중대 고비로 꼽혀 왔다. 이달 하순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5차 전원회의가 예고돼 있고, 25일 이후는 미국이 연말 휴가 시즌이어서 업무를 접기 때문이다. 이때까지 북미가 비핵화 협상에서 타협점을 찾지 못하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내년 1월 1일 신년사에서 ‘새로운 길’을 대내외에 천명할 거라는 전망에 더 무게가 실리고 있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시험 등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설정한 ‘레드라인(금지선)’을 넘나드는 도발도 예상된다.
여전히 관건은 비건 대표가 들고 올 메시지다. 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가 난항에 빠졌던 지난해 12월 비건 대표는 인천국제공항으로 입국하며 대북 인도적 지원 확대 등의 유화 메시지를 던졌다. 그 결과 북미 대화의 물꼬가 터졌다. 비건 대표가 이번에도 타개책을 들고 올지, 이에 북한이 반응할지가 핵심 변수인 셈이다.
하지만 분위기는 비관적인 쪽에 더 가깝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미국의 이번 안보리 소집을 보며 미국이 연말까지 자신들이 원하는 셈법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기대를 북한이 접은 듯하다”며 “‘비건 효과’로 북한이 다시 태도를 바꿀 가능성은 희박해졌다”고 말했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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