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힝야족 테러에 불가피한 대응” 학살에 눈감은 수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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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힝야족 테러에 불가피한 대응” 학살에 눈감은 수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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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2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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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평화상 수상자이자 미얀마 민주화 운동과 인권의 상징이던 아웅산 수치 미얀마 국가고문역이 11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국제사법재판소에서 열린 지난 2017년 자국내 무슬림 소수민족 로힝야 집단학살 혐의 관련 공판 이틀 째 출석을 마친 후 자리를 떠나고 있다. 헤이그=EPA 연합뉴스

미얀마 정부의 실질적 지도자이자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이 로힝야족을 집단학살한 자국 군부를 적극 옹호해 논란이 일고 있다. 10,11일(현지시간) 네덜란드 헤이그 국제사법재판소(ICJ)에서 열린 ‘로힝야족 집단학살’ 재판에 피고인 신분으로 출석한 수치 고문은 군부의 로힝야족 학살을 “로힝야족의 무력 사용에 대한 대응 차원이었다”고 주장했고, 로힝야족은 “거짓말”이라며 울분을 터뜨렸다.

수치 고문이 로힝야족 학살에 직접 간여했다고 볼 만한 증거는 거의 없어 그가 유죄판결을 받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하지만 국제사회에선 “정치적 이익을 위해 인권범죄에 눈감았다”는 비판여론이 들끓고 있다. 15년간의 가택연금을 비롯한 군부독재의 갖은 탄압에 맞섰고, 민주ㆍ인권의 상징으로 평가받으며 노벨평화상까지 받았던 그가 지금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인종학살을 두둔한다는 비난을 받는 처지가 된 것이다.

AFP통신과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수치 고문은 주로 침묵으로 일관했던 첫째날 재판과는 달리 둘째날에는 로힝야족 학살 혐의를 강하게 부인했다. 그는 “미얀마군이 국제인도법을 무시하고 부적절한 힘을 사용한 일부 경우를 배제할 수 없다”면서도 “인종학살 의도가 있었다고 가정하기는 어렵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군부의 작전은) 로힝야 반군의 공격에 대한 대(對)테러 차원의 불가피한 대응이었다”고 주장했다.

‘로힝야 사태’는 2017년 8월 로힝야 반군이 미얀마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경찰초소를 공격하자, 미얀마군이 토벌에 나선 사건이다. 이로 인해 로힝야족 수천명이 사망했고, 약 74만명의 로힝야족이 방글라데시로 피신해 현재 난민촌에 살고 있다. 국제사회는 불교국가인 미얀마가 무슬림인 로힝야족을 정치적으로 탄압한 사건으로 간주했고, 국제앰네스티 등 인권단체들은 수치 고문에게 줬던 상과 명예시민증을 회수했다. 또 이슬람협력기구(OIC) 57개국 회원의 지지를 받은 서아프리카의 감비아가 정식으로 미얀마 정부를 제소하면서 이번 재판이 열리게 됐다.

수치 고문의 당당한 항변이 전해지자 로힝야족은 폭발했다. 방글라데시 쿠투팔롱 지역의 로힝야 난민캠프에 머물고 있는 모하마드 유누스는 12일 “우리의 희망이었던 수치는 억압에서 풀려난 뒤 그 희망을 산산조각 냈다”고 말했다. 다른 난민인 로비 울라는 “최고법원에서 거짓말을 했다. 정말 부끄러운 일”이라고 비판했다.

당시 상황을 모를 리 없는 수치 고문이 군부를 두둔하고 나선 건 자국 내부의 여론을 의식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미얀마 국민 다수는 로힝야족에 대한 수치 고문의 태도를 적극 지지하고 있다. 식민지 시절 영국을 등에 업은 로힝야족이 버마(미얀마의 옛 이름)인들을 탄압한 과거사 탓이다. 내년 총선을 앞둔 수치 고문으로선 민주화 정권을 지키기 위해 군부의 만행을 눈감아야 하는 모순적 상황에 처한 셈이다.

이날 재판장 방청객에서 수치 고문의 증언을 직접 들은 로힝야족 우마웅 툰 킨은 “불행하게도 수치의 태도는 전적으로 한쪽에 치우쳤다”면서 “정치적 인기를 얻기 위해 민족주의의 칼날을 휘두르는 것에 다름 아니다”고 지적했다.

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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