킴 투이. 문학과지성사 제공

지난달 1일 영국 런던 외곽의 냉동 컨테이너 트럭에서 밀입국하려던 39명의 베트남인이 숨진 채 발견됐다. 최저온도가 영하 25도인 냉동고 안에서 저체온증으로 사망한 이들 대부분은 집안에 보탬이 되겠다며 유럽으로 향한 베트남 청년들이었다. 북부 응헨 출신의 26세 팜티짜미는 네일숍에 취직해 부모가 진 1만 9,000달러의 빚을 갚으려는 계획이 있었고, 응에안성 출신의 19세 부이티능은 아버지가 암으로 사망한 후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영국으로 떠났다.

베트남계 캐나다 작가 킴 투이 역시 41년 전 베트남을 떠나 캐나다로 향하는 배에 타고 있었다. 1968년 1월 30일 구정을 기해 시작된 북베트남의 대공세가 막바지에 접어든 9월에 태어난 작가는, 공산정권을 피해 가족들과 함께 베트남을 떠나 망명길에 오른다. 해적, 굶주림, 병, 물부족, 옴, 그리고 무엇보다 육지에 다시 발을 디딜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싸우며 시암만을 건넜다. 그런 작가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200명의 난민을 위해 준비된 수용소와, 그곳을 가득 채운 2,000명의 난민이었다.

‘루’는 이런 작가의 자전적 경험을 담은 장편소설이다. 베트남을 떠나 말레이시아 난민 수용소를 거쳐 캐나다 퀘벡에 정착한 작가의 삶이 그대로 담겼다. 작가의 분신이라 할 수 있는 주인공 응우옌 안 띤을 내세워, 보트피플로 살아온 작가의 단상이 생애를 따라 잔잔하게 펼쳐진다. 지방장관의 맏딸이었던 어머니와 유복했던 어린 시절, 전쟁과 북베트남 군인들에 의해 산산조각난 살림, 난민수용소의 시절, 어머니 같은 정성으로 이들을 품어준 퀘벡의 작은 도시 그랜비,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기 위한 가족들의 분투, 그리고 떠나온 국가와 정착한 도시 어느 곳에서도 속하지 못한다는 경계인으로서의 혼란.

일종의 ‘디아스포라 문학’임에도 불구하고, 책에는 소외감과 향수 대신 따뜻한 서정과 환대가 감돈다.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은 ‘아메리칸드림’이라는 똑같은 꿈을 꾸던 대가족간의 유대다. 방 세 개짜리 좁은 아파트에서 스물 다섯 명이 함께 지내야 했지만, 투이에게 가족은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누고 같이 웃고 다투면서도 서로의 욕구와 꿈에 대해 가장 잘 아는 버팀목이었다.

“내가 열다섯 살이었을 때, 닭 가공 공장에서 일하던 여섯째 이모가 나에게 차(茶)를 선물했다. (…) 이모는 각기 다른 직업이 적힌 열 개의 쪽지를 반으로 접어 찻잎들 사이에 끼워 넣었다. 기자, 가구세공인, 외교관, 변호사, 패션 디자이너, 스튜어디스, 작가, 인도주의 활동가, 영화감독 정치가. 이모의 선물은 내게 다른 직업들이 더 있다는 것을, 나만의 꿈을 꾸어도 된다는 것을 가르쳐주었다.”(113쪽)

가족들의 소망을 먹고 자라 대학에서 번역학과 법학을 전공한 뒤 변호사가 된 작가는 고향 땅에 머물며 이방인으로서 자신의 뿌리를 다시 바라보게 됐다. 이후 변호사 일을 그만두고 퀘벡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면서 베트남 음식을 소개하는 요리 연구가로 활동했다. 사이공에서 유년기를 보낸 프랑스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를 사랑했던 킴 투이는 자신의 역사를 제2모국어가 된 프랑스어로 써나갔다. 작가가 마흔 살이 되던 2009년 탄생한 첫 소설 ‘루’는 퀘벡과 프랑스 전역을 휩쓸고 20여개 언어로 번역됐다. 이후 연달아 출간된 ‘만(man)’과 ‘비(vi)’ 역시 작가의 분신이라 할 수 있는 베트남 여인을 내세워 퀘벡 속 베트남 문학을 세계에 알렸다. 심사위원의 성폭행 추문으로 취소된 지난해 노벨문학상을 대신해 제정된 뉴아카데미문학상 최종 후보로 오르기도 했다.

‘루’ ‘만’
킴 투이 지음ㆍ윤진 옮김
문학과지성사 발행ㆍ각 1만3,000원ㆍ각 203쪽 219쪽

옆으로 찢어진 눈을 가졌기에 끝내 코카서스족(백색 인종)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 작가는, 대신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고 모두를 사랑하기로” 한다. 이 때문에 책은 작가 개인 역사를 뛰어넘어, 수많은 베트남인이 공유한 뼈아픈 역사를 기록한 증언문이자, 침묵 속에 가려진 이들에게 보내는 작가의 헌정문이다. 책에는 “동포들에게(Aux Gens du pays)”라는 헌사가 실려 있다. 전쟁은 끝났지만, 작가가 떠난 후에도 여전히 베트남에는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 더 나은 삶이 있을지 모른다는 ‘드림’이 호황이다. 킴 투이의 이야기가 현재진행형으로 읽히는 이유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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