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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C] ‘최연소’는 연륜 부족의 동의어가 아니다

입력
2019.12.13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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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산나 마린 핀란드 신임 총리와 그레타 툰베리가 올해의 인물로 표지에 등장한 미국 시사주간 타임. 로이터 연합뉴스ㆍ타임 홈페이지 캡처
산나 마린 핀란드 신임 총리와 그레타 툰베리가 올해의 인물로 표지에 등장한 미국 시사주간 타임. 로이터 연합뉴스ㆍ타임 홈페이지 캡처

남보다 더 높이, 더 빨리 비상하는 게 그 무엇보다 중요한 정글 같은 경쟁사회에서 ‘최연소’라는 수식어는 성공의 다른 이름이다. 오기와 끈기로 많은 이들의 부러움 속에 먼저 고지에 오르는 일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기회가 아니기에 종종 “패기는 있지만 연륜은 부족”이라는 질투 어린 부연 설명이 따라붙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런 최연소 타이틀을 요즘 들어 참 자주 접했다. 세계 기후변화 대처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스웨덴의 10대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16)는 미국 시사주간 타임의 올해의 인물로 선정됐다. 타임이 올해의 인물 선정을 시작한 1926년 이래 최연소 선정자다. 핀란드에서는 전세계 현직 총리 중 최연소인 34세의 여성 총리가 탄생했다. 산나 마린 총리다. 그는 취임 직후 19개 장관직 중 12개 자리를 30대 3명이 포함된 여성들로 채운 내각 인사를 했다. 국내에서도 지난달 LG그룹이 정기 인사에서 30대 여성 임원 2명을 새로 발탁했다.

이들은 최연소라는 타이틀에 큰 의미를 두지 않으려 하는 공통점도 지녔다. 마린 총리는 총리 지명 직후 나이 관련 질문에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며 “내 나이와 젠더(genderㆍ성)에 관해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답했다. 그는 27세인 2012년 시의원으로 정계에 진출했다. 시의원 당선 이전에 사회민주당의 청년조직에서 활동한 것까지 감안하면 정치 경력은 13년에 이른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는 “마린 총리는 갑자기 나타난 게 아니다”며 “그는 꽤 호감도가 높은 정치인”이라고 평했다. 학교를 그만두고 환경운동가로 활동하는 툰베리는 지난해 테드(TED) 강연에서 “지금 당장 기후변화에 맞서지 않으면 이 문제가 내 평생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2078년이 되어 내 자녀와 손주가 2018년에 왜 아무 것도 하지 않았냐고 물어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따라서 이들의 남다른 빠른 성취는 혹독한 자기 관리 이전에 기존 사회적 규범이 아닌 본인이 선호하는 방식대로 자신의 시간을 소비하는 밀레니얼ㆍZ세대의 세대 특성에서 기인하는 면이 있다. 그러니 이들에게 기존에 최연소 타이틀을 얻은 이들에게 하듯 관성적으로 “연륜 부족” 운운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문득 미국 브로드웨이의 전설로 불리는 78세의 현대무용가 트와일라 타프가 품위 있는 노년의 비결을 담아 지난 가을 발간한 ‘킵 잇 무빙(Keep It Moving)’의 내용 일부가 떠오른다. 그는 ‘모두를 위한 멘토링(Mentoring for All)’이라는 장(章)에서 세대 간 장벽을 허물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특히 배울 점이 있는 나보다 젊은 사람을 찾아가 가르침을 간청하라고 강조한다. 경험과 지식이 많아 스승 역할을 하는 ‘멘토’와 도움을 받는 ‘멘티’의 관계는 연장자와 연소자로 설정하기 십상이지만 그 반대의 경우가 더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이다. 더 이상 오랜 세상 경험 축적이 지혜를 보증하는 시대가 아니며 젊은 사람들의 전문성에 마음을 활짝 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노화의 직접적 영향을 받는 신체를 쓰는 무용가여서 내린 결론이겠지만 오늘날의 빠른 사회변화 속도를 생각하면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이야기다. 우리말로 “알겠어요, 꼰대 아저씨”쯤으로 풀이될 “오케이, 부머(OK, boomer)”라는 말의 유행이 영미권에서 좀처럼 잦아들지 않는 등 전 세계적으로 세대 간 갈등이 꾸준히 심화하는 이유 중 하나도 젊은층의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는 기성세대가 많아서일 터다.

최연소의 수식어를 품은 이들도 어김없이 나이를 한 살 더 먹게 되는 새해가 코앞이다. 젊은 정치인과 젊은 활동가, 젊은 기업인이 달라지는 숫자에 관계 없이, 과도한 주목의 부담을 벗어 던지고 이미 충분히 갖추고 있는 전문 역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새해가 되면 좋겠다.

김소연 국제부 차장 jollylife@hankookilbo.com

지난 2005년 미국 뉴욕의 한 패션 시상식에 참석한 무용가 트와일라 타프와 그의 신간 ‘킵잇무빙(Keep It Moving)’의 표지. AP 연합뉴스 자료사진ㆍ아마존 캡처
지난 2005년 미국 뉴욕의 한 패션 시상식에 참석한 무용가 트와일라 타프와 그의 신간 ‘킵잇무빙(Keep It Moving)’의 표지. AP 연합뉴스 자료사진ㆍ아마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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