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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당 주거비 10만원… 청년주택 ‘터무늬 있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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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당 주거비 10만원… 청년주택 ‘터무늬 있는 집’

입력
2019.12.16 04:40
수정
2019.12.16 07:35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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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사랑의열매 공동기획 ‘나눔이 세상을 바꾼다’] <2> 청년주거 문제 해소를 위한 ‘공동체 주택’

서울 강북구 번동 소재 시민출자 청년주택 '터무늬 있는 집' 1호 옥상에 청년주거공유 사업을 하고 있는 활동가 4명이 모였다. 시계방향으로 왼쪽 위부터 황명진(1호) 씨, 홍종원 터무늬 있는 집 운영위원, 박진우(3호)ㆍ박철우(1호) 씨. 이한호 기자.
서울 강북구 번동 소재 시민출자 청년주택 '터무늬 있는 집' 1호 옥상에 청년주거공유 사업을 하고 있는 활동가 4명이 모였다. 시계방향으로 왼쪽 위부터 황명진(1호) 씨, 홍종원 터무늬 있는 집 운영위원, 박진우(3호)ㆍ박철우(1호) 씨. 이한호 기자.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주인공 덕선과 정환, 택이가 골목에서 나올 것만 같은 서울 강북구 번동의 한 빌라 401호에 청년 4명이 함께 살고 있다. 이들은 시민출자 청년주택 ‘터무늬 있는 집’ 1호 입주자들이다. 터무늬 있는 집이란 이름엔 터무니없이 임대료가 너무 비싸 ‘지ㆍ옥ㆍ고’(지하방, 옥탑방, 고시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청년들의 열악한 주거환경을 바로잡았으면 하는 바람과 이 집에서 삶의 터전을 다지려는 청년들의 꿈이 담겨 있다.

터무늬 있는 집은 지역 내 청년 활동가들에게 안정된 주거를 제공해 주는 사업으로 2016년 사회투자지원재단이 시작했다. 청년들이 사는 주택의 전세보증금은 청년 주거 문제 해소를 바라는 시민들의 자발적 출자를 통해 마련된다. 출자자는 약정기간(2년, 3년, 5년)과 이자율(무이자, 0.5%, 1%)을 선택해 출자를 하고, 약정기간이 끝나면 바로 다음날 원금과 이자를 돌려받는다. 이자를 받지 않을 경우 연 1% 이자에 해당하는 기부금 영수증을 받을 수 있다. 기금의 모금과 관리를 맡고 있는 사회투자지원재단은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2억1,000만원을 지원받아 재단 부설 ‘터무늬제작소’를 통해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시민 출자를 통해 청년의 사회가치 창출을 목표로 하는 새로운 주거ㆍ세대 협력 모델인 셈이다.

터무늬 있는 집 1호는 57.46㎡(17평)의 방 세 개짜리 다세대주택이다. 큰 방은 침대 4개를 들여놓고 침실로 쓰고 있다. 다른 한 방은 작업실, 나머지 방은 옷방이자 이층침대가 놓인 사랑방이다. 전세 보증금(1억2,000만원)은 15명의 개인과 5곳의 단체가 출자해 마련했다. 입주 청년들은 보증금에 대해 연 2%의 사용료(월 20만원)를 나눠 낸다. 공과금을 포함한 1인당 주거비는 10만원 수준이다.

2018년 4월 1호 집에 입주한 청년들은 강북 마을 사랑방 ‘건강의 집’과 지역 여행 동아리 ‘모꼬지’에서 활동하던 6명이었다. 2016년부터 강북구와 도봉구 등에서 청년 지역활동가로 활동하면서 만난 이들은 경제적으로 워낙 어렵다 보니 밥조차 해 먹기 어려울 정도로 비좁은 반지하 방에서 벌레들과 싸우며 살았다. 그러다 터무늬 있는 집 운영위원(감사)으로 활동하고 있는 홍종원씨의 권유로 이 집에 둥지를 틀었다. 현재는 2명이 떠나 박철우(30), 황명진(32), 홍찬의(32), 박민우(26)씨 등 4명이 거주하고 있다. 박민우씨는 군복무 중이라 휴가 때 집을 찾는다. 청년들은 “이 집에 거주하면서 사람답게 밥을 해 먹고 살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황명진씨는 “집이 4층에 있고, 옥상도 이용할 수 있어 좋다”고 만족감을 표했다.

피를 나눈 가족이라도 살다 보면 얼굴도 보기 싫을 때가 있는데, 이 30대 남성들이 한 집에서 오순도순 사는 원동력은 ‘대화’였다. 박철우씨는 “확실히 경제적 부담이 적은 장점이 있지만 그것만으로 같이 살 순 없다”며 “때로는 얼굴을 붉힐 정도로 싸우기도 하지만, 집에서 마주 앉아 서로의 미래와 꿈을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큰 힘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같은 집에서 살며 끼니를 함께하는 식구가 있어 행복하다”고 덧붙였다.

’터무늬 있는 집' 1호에 모인 청년들이 환하게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한호 기자
’터무늬 있는 집' 1호에 모인 청년들이 환하게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한호 기자

이들은 이제 더 큰 꿈을 키우고 있다. 1호 집에 거주하고 있는 박철우ㆍ황명진씨, 터무늬 있는 집 3호에 거주하고 있는 박진우(32)씨는 홍종원 터무늬 있는 집 운영위원과 함께 지난해 1월 ‘로컬엔터테인먼트 협동조합’을 설립했다.

협동조합은 지난해에는 서울시에서 시행하는 ‘공동체주택 커뮤니티 아이디어대회’ 기획 및 진행을 맡았고, 올해는 서울시 공모사업인 ‘세대균형 프로젝트’에서 쓰레기 인식개선사업과 문화공연 등을 맡았다. 홍종원씨는 “노후화된 지역 문화를 활성화하고 모든 세대가 함께 살아가는 지역 공동체를 만들어나가는 기업이 되는 게 우리의 꿈”이라고 설명했다.

그 사이 터무늬 있는 집도 4호까지 늘어났고 재단은 이들 집의 관리 운영을 거주하고 있는 지역 청년그룹에 맡겼다. 이중 로컬엔터테인먼트 협동조합이 관리를 맡고 있는 3호는 ‘LH사회적 주택’으로, 빌라 한 동(10가구)에 현재 27명의 청년이 공동거주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경기 부천시 소사구 소사본동 단독주택에 마련된 터무늬 있는 집 2호는 ‘모두들 청년주거협동조합’이, 경기 시흥시 신천동 저층 아파트에 있는 4호는 ‘PNP 청년기업’이 운영을 맡고 있다.

이들은 청년 공동주거에서 한 발짝 더 나가 ‘결혼’ 공동주거를 고민하고 있다. 박철우씨는 “청년 공동주거 사업이 활성화돼 혜택을 받은 이들이 많아지면 자연스럽게 결혼공동체를 구축하려는 움직임이 가시화할 것”이라며 “터무니없는 결혼비용 때문에 결혼에 대한 생각을 접은 청년들에게 새로운 결혼과 지역공동체 사업을 제시하기 위해 서로 머리를 맞대고 있다”고 말했다.

황명진씨는 “우리를 가난하고 불쌍한 청년들로 오해하는 이들이 있지만, 우리는 지역에서 우리가 할 일을 찾고 주민들과 소통하며 인생의 꿈을 키우고 있다”며 “우리 같은 청년들이 많아져 지역발전은 물론 새로운 주거문화가 사회에 정착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이영림 사회투자지원재단 부설 터무늬제작소 팀장은 “터무늬 있는 집은 시민이 투자하고 청년이 운영하는 공동체 주택”이라며 “이 사업은 우리 사회에서 나눔과 꿈이 공존할 수 있는 마중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회투자지원재단은 내년에 SH서울주택도시공사와 민관협업형 청년주택 ‘터무늬 있는 희망아지트’ 사업브랜드를 론칭해 5개 지역에 다목적용 빈집활용 청년 주택을 공급할 계획이다.

김치중 기자 cjkim@hankookilbo.com

◆사랑의열매 지원 사업소개

△사업명: 청년 정착을 위한 쉐어하우스 제공 사업 ‘터무늬 있는 집’

△사업기관: (재)사회투자지원재단

△사업취지: 지역 활동 청년 주거 및 정착 지원

△사랑의열매 지원규모: 2억1,000만원(3년)

※한국일보와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연말연시 국민 나눔운동인 ‘2020 희망 나눔 캠페인’에 대한 국민 참여를 독려하기 위한 공동 기획기사 ‘나눔이 세상을 바꾼다’를 5회에 걸쳐 싣습니다. 캠페인으로 모인 기금은 장애인, 취약계층 등 사각지대에 놓인 이웃을 발굴해 이들에게 생계비, 의료비는 물론 일자리와 주거 등을 지원하는 데 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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