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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새가 날아오는 도시

입력
2019.12.13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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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홍제동 근린공원 산수유 열매가 물방울을 머금고 있다. 고영권 기자
서울 홍제동 근린공원 산수유 열매가 물방울을 머금고 있다. 고영권 기자

산수유는 매화와 더불어 도시에서 가장 일찍 꽃이 피는 나무다. 다른 나무들보다 일찍 필 꽃을 준비해서인지, 산수유의 겨울눈은 유난히 통통하다. 3월 말이 되면 통통한 겨울눈이 벌어지고 노란꽃이 피어난다. 아직 다른 나무들은 겨울의 모습을 하고 있으니, 초봄의 산수유는 사람들의 시선을 독차지한다. 산수유의 화려한 시절은 3월이다.

사람들이 잘 알아주진 못하지만, 사실 12월의 산수유도 만만치 않다. 잎을 떨구는 나무들이 모든 잎을 다 내려놓았을 때, 작고 빨간 열매를 잔뜩 달고 있는 산수유는 눈에 띌 만하다. 하지만 노란꽃의 산수유와 달리, 빨간 열매의 산수유를 알아보는 사람은 적다. 아무래도 긴 겨울 끝에 첫 꽃을 피우는 산수유의 존재감이 조그만 빨간 열매를 매단 산수유보다 훨씬 크겠지. 그렇게 노란꽃을 보며 반가워했던, “드디어 산수유가 피었네”라고 말하던 사람들도 열 달 후 빨간 열매의 산수유를 어쩌다 발견하고는 “어머! 못 보던 나무가 있네!”라며 나무의 정체를 궁금해하곤 한다. 아, 그 중엔 나도 있었지.

겨울 내내 빨간 열매를 계속 달고 있지만, 12월이 또 하나의 전성기인 이유는 빨간 열매가 12월에 가장 많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겨울의 산수유 열매는 나 같은 사람의 눈에만 띄는 것이 아니다. 나야 뭐 산수유 열매 정도야 보이던 말던 먹고 사는데 아무 상관이 없지만, 먹을 것 귀한 겨울을 견뎌내야 하는 새들은 눈에 불을 켜고 빨간 열매를 찾아 다닐 것이다. 그러니 빨간 열매가 점점 줄어들 수밖에. 이제는 도시새가 된 직박구리는 산수유가 없었다면 황량한 도시의 겨울을 어떻게 보냈을까. 아니, 산수유와 같은 많은 나무 열매가 도시에 존재하는 것이 직박구리가 도시에 자리를 잡은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도시에는 새가 먹을 만한 것이 많이 있다. 이제는 유해조류가 되어 “먹이 주지 마세요”의 대상이 된 비둘기도 사람이 흘린 과자를 집어 먹거나 쓰레기통을 뒤지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종종 보도블록 사이에 난 작은 풀을 쪼는데, 풀을 뜯어 먹고 있는 것이 아니라 풀끝에 보일랑 말랑 맺혀 있는 작은 이삭을 열심히 먹고 있는 것이다. ‘저 작은 것 먹어서 언제 배 채우나’ 싶다가도 지천에 작은 풀들이 있으니 비둘기 입장에서는 나쁜 선택만은 아니겠다 싶다.

겨울의 도시에는 산새가 많이 날아오는데 그만큼 먹을 게 많기 때문이다. 예쁜 꽃을 보기 위해 가로수를 은행나무와 플라타너스에서 벚나무와 이팝나무로 바꿨지만, 그 덕분에 먹음직한 열매가 맺혔다. 도시 인근 산보다 시내에서의 나무 종 다양성이 더 높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우리는 공원과 아파트 정원에 다양한 종류의 나무를 심었고 열매가 맺혔다. 그리고 새가 날아왔다.

도시의 공원에서 탐조를 하다보면 정말 놀라울 정도로 많은 종류의 새가 관찰된다. 참새, 비둘기, 까치 정도만 살 것 같은 도시에서 박새, 곤줄박이, 딱새, 붉은머리오목눈이뿐만 아니라, 오색딱따구리, 콩새, 굴뚝새, 나무발바리, 동고비, 참매, 황조롱이도 보인다. 물이라도 있으면 훨씬 많은 수의 물새가 합류한다. 도시에는 인간과 새가 함께 살아간다.

새는 도시에서 인간이 수용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최상위 포식자다. 도시에 새가 많이 날아온다는 것은 그만큼 탄탄한 도시생태계가 조성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자연을 파괴할 것만 같은 우리도 도시 생태계에 일조할 수 있다. 우리가 심은 나무는, 우리가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새의 생존의 필수 조건인 먹이, 은식처, 번식환경을 제공한다.

인간만 살기에 외로운 도시, 그곳에 새가 날아온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이제 나무를 심고 가꿀 때, 그 나무에 기대어 도시에서 함께 살고 있는 새들의 삶을 한번쯤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한번 둘러보라. 정말 많은 새가 함께 살고 있다.

최성용 도시생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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