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보험 재계약을 하면서 약관을 자세히 읽어 보았다. ‘약관(約款)’은 ‘조약이나 계약 따위에서 약속하여 정한 하나하나의 조항’이란 뜻인데, 쉽게 말해 ‘계약 내용’이다. 예전에 비해 일상어가 많고, 인쇄된 글자가 커졌으며 다양한 색깔로 나와 있어 읽기 쉽다. 그럼에도 아직 언어 사용에 잘못된 부분이 많다.
어휘적인 면에서, ‘판 사람’, ‘빌린 사람’처럼 쉬운 표현을 쓰면서도 ‘제세액(諸稅額)’, ‘과실상계(過失相計)’, ‘개호(介護)하다’, ‘기왕증(旣往症)’ 등 사전을 찾지 않으면 뜻을 알기 어려운 말을 쓰고 있다. ‘돌려 드리다’를 쓰는 한편 한자어 ‘반환하다’, ‘환급하다’를 써서 혼란스럽다. 외래어 ‘라디에이터’, ‘브러시’, ‘퓨즈’를 ‘라지에이터’, ‘브러쉬’, ‘휴즈’로 잘못 적은 것도 보인다. “차량의 Key를 분실하거나”에서는 ‘열쇠’ 대신 영어를 섞어 썼다.
문법적 잘못도 꽤 많다. “보험회사에게 그 사실을 알려야 합니다”에서 무정명사 뒤에 조사 ‘에’를 써야 함에도 ‘에게’를 썼다. “운반하는데 든 비용”의 의존명사 ‘데’를 띄어 쓰지 않고 붙여 적었다. “자동차를 소유한 모든 사람이 가입해야 하는 의무보험으로써”의 경우 ‘의무보험으로서’가 옳다. “피보험자가 손해배상책임을 짐으로써 입은 손해를 보상”은 뜻이 아주 불명확하다. 대응 항목이 “피보험자가 입은 손해를 보상”인 점을 고려하면 ‘다른 사람이 입은 손해를 보상’한다는 내용인데, ‘손해배상책임을 짐으로써’가 들어가서 의미 혼란이 생겼다.
이처럼 어렵고 정확하지 못한 계약 내용은 소비자들에게 큰 불편을 주며, 보험사의 신뢰도를 떨어뜨린다. 계약이나 법률 용어는 누구나 알기 쉬운 일상어로 정확하게 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정복 대구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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