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안 ‘28분 만에 처리’ 충격… 철야 농성
11일 본회의 취소에도 속수무책“얻은 게 없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로텐더홀에서 열린 예산안 날치기 세금도둑 규탄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한‘4+1’ 협의체의 10일 내년도 정부 예산안 국회 처리 과정에서 자유한국당은 수권 정당을 노리는 제1 야당의 지위에 걸맞지 않은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 당 지도부는‘무더기 수정안 제출’로 최소 반나절은 버틸 수 있을 거라 기대했지만, 문희상 국회의장의 초강수에 가로막혔다. ‘4+1’ 협의체가 한국당을 제외하고 마련한 예산안은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지 불과 28분 만에 처리됐다. 당 지도부의 전략 부재가 고스란히 노출된 것이다.

한국당은 10일 오후 11시 50분쯤 본회의가 산회하자마자 본회의장을 점거하고 철야농성을 벌였다. “밀실 야합 날치기!”“세금도둑 강력 규탄!”을 외쳤지만, 민주당은 이미 예산안을 받아 들고 떠난 뒤였다. 한국당은 11일에도 속수무책이었다. 규탄대회와 최고위원ㆍ중진의원 비공개 회동, 의원총회를 분주하게 열었지만, 공직선거법 개정안과 공수처 설치법 등 패스트트랙 법안 처리 과정에서 또 다시 위력을 발휘할 ‘4+1 공조’를 흔들 뾰족한 수를 찾지 못했다.

이에 황교안 대표는 ‘무기한 농성 카드’를 꺼냈다. 황 대표는 의총에서 “좌파 폭정을 막아내기 위해 본회의장 앞 로텐더홀에서 무기한 농성에 들어가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농성 카드도 실효가 별로 없긴 마찬가지였다. 이날 오후 2시로 예정돼 있었던 본회의를 민주당이 취소한 탓에, 농성으로 저지할 대상이 사라진 것이다. 이에 한국당은 국회 상임위원회 별로 3개 조를 나눠 본회의장을 점거하려던 계획을 일단 접었다가 저녁에 다시 농성을 시작했다.

투쟁으로 달려가는 당 지도부와 달리, 당내에선 민주당과의 패스트트랙 법안 협상론이 고개를 들었다. 당 지도부가 유력하게 검토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에 의한 의사진행 방해) 카드는 범여권의 ‘쪼개기 임시국회’ 전략 앞에 무기력할 수밖에 없고, 일부 중진 의원이 언급한 ‘의원직 총사퇴’는 현실성 없는 분풀이에 불과하다는 현실론 때문이다.

한 초선 의원은 “지금 이 국면에선 민주당에서 뭐라도 하나 얻어 올 생각을 해야 하는데, 원내 지도부의 세밀한 전략이 부족해 보인다”며“어제 의원들에게 밤샘 농성은 왜 시켰는지 모르겠다. 기운만 빼고 얻은 게 하나 없다”고 꼬집었다. 과거 원내지도부를 지낸 중진 의원은 “삭발이나 단식 투쟁은 협상력을 제고하기 위한 수단이지, 그 자체로 협상 카드가 될 순 없다”며 “새 원내지도부가 구성된 마당에 이제는 협상을 통해 어떻게 실리를 챙길 지 고민할 때”라고 말했다.

정승임 기자 choni@hankookilbo.com

이서희 기자 sh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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