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무현 정부 초대 법무부 장관인 강금실은 취임 100일을 맞아 전국 검사에게 장문의 편지를 보냈다. “검사는 삶의 한 극점에 이른 ‘순결성’을 지닌 직업인” “철저히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법률가의 세계관을 유지하는 검사” 등 찬사 일색의 편지는 ‘검찰 개혁’을 바라는 다수의 기대를 실망감으로 바꿨다. 일부 검사들은 “사춘기 소녀가 쓴 듯한 감상적 연애편지”라고 말했다. 결국 강 장관은 판사 출신 여성 장관이라는 상징적 효과만 남기고 아무 성과 없이 1년 반 만에 전격 교체됐다.
□ 그를 장관으로 추천한 이가 당시 문재인 민정수석이다. 환경부나 보건복지부 장관 발탁을 염두에 두고 추천했으나 노 대통령이 “이왕이면 과감하게 법무부 쪽을 맡기자”고 해 깜짝 놀랐다고 문 대통령은 자서전에 썼다. 노 대통령도 걱정이 됐는지 강 변호사를 직접 만났는데 본인이 “해보겠다”며 의욕을 보였다고 한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법무부 장관 후보자 지명에는 당시 문 대통령의 ‘실패’ 경험이 반영된 듯하다. 같은 여성 장관에 검찰 개혁이라는 화두가 닮은 꼴이지만 노리는 포석은 반대다.
□ 문 대통령과 추 의원 사이는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추 의원은 2016년 ‘친문 세력’의 전폭적 지지로 당 대표로 선출됐지만 대선 정국에서 갈등을 빚었고, 대선 승리 후엔 국무위원 인사 추천권을 놓고 청와대와 대립했다. 소신이 강하고 고집이 센 성격도 문 대통령이 선호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추 의원을 발탁한 것은 ‘윤석열 검찰’의 대항마로 적격이라는 판단에서다. 기질과 성향이 비슷해 윤석열의 ‘천적’이라고 본 것이다. 추 의원은 “판사 출신에 당 대표를 역임한 5선 ‘거물’이 무슨 장관으로 가느냐”며 한때 주저했지만 소임을 완수하면 대선 후보로 발돋움할 수 있다는 말에 설득당했다는 얘기도 있다.
□ 검찰은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조국보다 더 세지 않겠냐”는 말도 나온다. 추 후보자는 윤 총장과의 관계에 대해 “서로 모르는 사이” “신경쓰지 않는다” “헌법과 법률에 의한 기관 간 관계”라고 거리를 뒀다. 내공과 관록이 묻어나는 말에 청와대는 반색을 하고 있다고 한다. 윤 총장은 지명 다음날 축하 전화를 걸었다. 법조계에서는 “고수는 고수를 알아본다”는 ‘고수론(高手論)’까지 나돈다. 판단은 이르지만 강금실은 ‘아마추어’, 추미애는 ‘프로’가 아닌가 싶다.
이충재 수석논설위원 cj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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