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통과한 2020년도 예산안]
100억 넘게 증액 SOC사업만 13개… 제대로 논의도 않고 ‘깜깜이 증액’

“호남고속철은 사업비가 제대로 투입돼야 공사기간 내 준공이 된다. 내년 예산에 2,000억원은 플러스 돼야 한다.”(윤영일 무소속 국회의원)
“1,000억원 이상 예산이 반영되면 전부 이월이 될 상황이다.”(김경욱 국토교통부 2차관)
“그럼 1,000억원에라도 맞춰야 ‘의지가 보이는구나’ 판단할 것 아니냐.”(윤 의원)
“최대한 할 수 있는 게 30억원 정도….”(황성규 국토부 철도국장)
“그러면 30억원이라도 해 주세요.”(윤 의원)
지난 10월 열린 국토교통위 예산결산소위. 정부가 420억원을 편성해 국회에 제출한 ‘광주-목포간 호남고속철도 건설 사업’ 내년도 예산을 두고 ‘밀당’이 벌어졌다. 예산을 2,000억원으로 늘려야 한다는 국회의원의 주장에 국토부는 “설계가 내년 하반기 완료되면 공사는 1~2개월 정도 진행될 것”이라며 “오히려 대부분 예산이 다음해로 이월될 수 있다”고 난색을 표했다.
결국 30억원 증액으로 절충한 정부와 소위 의원들은 이를 예산결산특별위원회로 넘겼지만, 이 예산은 예결위 심사에서 제대로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은 채 정부안의 두 배가 넘는 900억원으로 10일 밤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공식 회의록에 근거를 찾아볼 수 없는 이른바 ‘깜깜이 예산’이다.
국회가 내년 예산 규모를 1조2,000억원 줄이면서도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은 9,000억원 늘렸다. 재정건전성을 내세워 예산 규모 감축을 강조하는 의원들이 올해도 어김없이 뒤로는 자기 지역구 챙기기에 바빴다는 지적이 나온다.
11일 국회에 따르면, 내년 SOC 예산은 전체 예산 가운데 정부안(22조3,000억원)보다 가장 많이(9,000억원) 늘어난 23조2,000억원으로 확정됐다. 이 가운데 도로, 철도 관련 사업으로 정부안보다 예산이 100억원 이상 증가한 건 13개다. 정부는 이들 사업 예산으로 2조7,811억원을 제시했지만 국회를 거치면서 3,497억원(12.6%) 늘어난 3조1,308억원이 최종 편성됐다.

‘도담-영천간 복선전철 사업’은 정부가 국토위 소위에서 “현재 제출 예산(4,980억원)으로 충분하다”고 설명했지만 김석기 자유한국당 의원이 “경북에서는 모자란다고 한다”며 대폭 예산 증액을 요청했다. 당시 회의에서는 결론이 나지 않았지만, 결국 최종적으로 480억원이 늘어난 5,460억원이 내년 예산으로 확정됐다.
김석기 의원은 포항-동해 전철화 사업 예산과 관련해서는 당시 회의에서 “내가 얘기하는 건 국토부가 하나도 수용을 안 한다”고 푸념했고, 같은 당 송언석 의원은 “증액 좀 해 주세요”라고 거들기도 했다. 정부는 당초 200억원의 예산을 220억원까지 늘리겠다고 했는데, 실제 국회를 통과한 예산은 225억원으로 더 늘었다.
광주-강진 고속도로 건설 사업(정부안 1,514억원)도 국회에서는 사업비 486억원을 더 늘려 예산 2,000억원을 맞춰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국토부는 10억원 증액만 수용하겠다고 맞섰다. 그러나 실제로는 230억원이 늘어난 1,744억원이 편성됐다. 이밖에 안성-구리 고속도로(2,501억→2,961억원), 함양-울산 고속도로(3,240억→3,690억원)도 국회에서 예산이 큰 폭으로 늘었다.
국회의원들은 여기에 내년 예산안에 편성되지 않은 사업이라도 ‘부대의견’을 통해 지역구를 살뜰히 챙겼다. 예산안 수정안에는 △서해선 이용객의 수도권 이동 편의 제고 방안 검토 △평택-오송 복복선화 추진시 천안ㆍ아산 주민 교통편의 고려 △경기도 도시철도망 구축 계획 수립에 적극 협조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세종=박세인 기자 sa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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