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상 국회의장 한밤 본회의 열리자마자 내년 예산안 곧바로 상정 ‘초강수’
지연작전 쓰다 뒤통수 맞은 한국당 “문 의장 사퇴하라” 뒤늦은 구호만
‘4+1’ 협의체(더불어민주당ㆍ바른미래당ㆍ정의당ㆍ민주평화당+가칭 대안신당)가 마련한 내년도 정부 예산안 수정안을 10일 본회의에서 처리한 여권의 전략은 전격적이었다. 허를 찔린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구호를 외치며 의결을 막아봤지만 허사였다. 결국 새해 예산안은 상정 28분 만인 오후 9시 6분 가결됐다.
20대 국회 정기국회 마지막날인 이날 국회는 종일 몸살을 앓았다. 문희상 국회의장, 더불어민주당 이인영ㆍ자유한국당 심재철ㆍ바른미래당 오신환 원내대표와 3당 예결위 간사 등이 모인 ‘7인 회동’은 5시간 넘게 마라톤 협상을 이어갔다. 한때 예산 삭감 규모에 동의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막판 타결 가능성이 점쳐졌지만 오후 7시쯤 상황은 급반전됐다. ‘오후 8시 본회의 개최’가 공지되면서다.
예정보다 30여분 늦게 열린 본회의에서 문 의장은 초강수를 뒀다. 오전 본회의에서 미처 처리하지 못한 200여개 안건을 먼저 처리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본회의가 열린 직후인 오후 8시 38분 4+1 협의체가 준비한 2020년도 정부 예산안 수정안을 바로 상정했다. 통상 예산안에 앞서 선(先)처리했던 예산부수법안보다도 먼저였다. 예산부수법안 수정안을 70여건 제출해 예산안 처리를 지연시키려던 한국당의 1차 전략은 무산됐다.
이에 한국당은 예산안 ‘수정안 카드’로 또 맞섰다. 4+1협의체가 마련한 수정안과 별도로 한국당 의원 108인 명의로 다른 수정안을 제출해 4+1 협의체 수정안 처리를 저지할 계획이었다. 이날이 정기국회 마지막 날이라 자정이 지나면 본회의 차수변경이 불가능해지는 점을 노린 전략이었다. 수정안 제안 설명으로 자정까지 시간을 끌면 예산안 처리를 막을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하지만 이 카드는 문 의장이 수정안 제안 설명 절차를 생략하면서 무력화됐다. 이후 조경태 한국당 의원이 반대토론에 나섰으나 원활히 진행되지 않자 문 의장은 토론 종료를 선언했고, 결국 표결로 이어졌다.
허를 찔린 한국당 의원들은 전원 기립한 상태로 ‘4+1 세금도둑’ 피켓을 들고 “문 의장은 사퇴하라”는 구호를 외쳤고 일부 의원들은 “제안설명을 하게 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것도 통하지 않자 한국당 의원들은 급기야 “아들공천 대가” “세습공천”으로 구호를 바꿔 문 의장을 공격했지만 소용 없었다.
본회의장은 아수라장이 됐지만 4+1협의체가 마련한 예산안 수정안은 속전속결로 처리됐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한국당이 제출한 예산안 수정안을 부동의한다”고 밝혔고 각본을 짠 듯 문 의장은 곧바로 헌법 57조를 언급하며 “부동의 결정에 따라 표결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후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 등 162명이 발의한 4+1협의체 수정안이 상정됐고 찬성 156표로 가결됐다.
예산안 처리 ‘파국’의 조짐은 이날 오전 9시쯤 포착됐다. 9일부터 밤새 정부 예산안을 심사한 국회 예결위 3당 간사인 민주당 전해철ㆍ한국당 이종배ㆍ바른미래당 지상욱 의원이 ‘합의 불발’을 선언하면서다. 513조원 규모의 정부 예산안 원안 중 한국당은 4조원, 바른미래당은 3조원을 삭감하자고 했으나, 민주당은 ‘4+1’ 협의체가 합의한 1조 2,000억원 삭감을 고수하면서 접점을 찾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예산안이 안건으로 잡혔던 본회의는 1시간 지연된 오전 11시에 처음 열렸고 여야는 민식이법(도로교통법 개정안 등) 등 처리가 시급한 안건 16개만 우선 통과시켰다. 이후 여야는 본회의 문을 닫고 예산안 협상에 올인했지만 합의를 이끌어내기엔 역부족이었다.
민주당은 제1야당을 제외하고 예산안을 처리하는 부담에도 불구하고 정기국회 내 예산안을 처리해야 한다는 절박감이 컸다. 예산안 늑장 처리를 막기 위한 국회선진화법(개정 국회법)이 2012년 제정된 이후, 여야가 예산안 처리 법정 기한(12월 2일)을 넘긴 적은 많지만 정기국회 회기 내에는 모두 처리됐기 때문이다. 또 예산안 이후 곧바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비롯한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법안을 처리해야 하는 여당으로선 예산안 강행 처리로 한국당 기선을 제압하고 패스트트랙 4+1협의체 공조를 유지하려는 의도도 컸던 것으로 보인다.
정승임 기자 choni@hankookilbo.com
류호 기자 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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