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립화 불발되자 출연금 대폭 줄여…관현악단 이름까지 못쓰게 해
포스코가 경북 포항과 전남 광양 등 3개 지역 유치원과 초중고 12개 교육기관을 둔 포스코교육재단에 지원을 축소하면서 학생 특별 프로그램이 폐지돼 말썽이다. 포스코교육재단이 창단한 청소년 관현악단 활동과 각 학교 영어 원어민 강의까지 중단되면서 학부모들은 교육 수준 하락을 우려하고 있다.
포항제철중학교에 다니면서 포셉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하는 자녀를 둔 김모(50)씨는 최근 관현악단의 이름을 바꿔야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재단이 건물 1층에 있던 연습실은 물론 관현악단 이름까지 사용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포셉오케스트라는 포스코교육재단이 2016년 10월 재단의 영문이름 ‘포셉(posef)’을 따서 산하 초중고 학생 80여명을 선발해 만든 관현악단이다.
부모들은 포스코가 지난해 10월 유치원과 초ㆍ중학교 8곳에 공립화를 추진하려다 실패하자 관현악단 폐지 등 압박에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 창단 때 80명이 넘은 단원은 30여명으로 줄었다. 학부모와 학생들도 어쩔수 없이 ‘포스챔버오케스트라’로 이름을 바꾸고 지역 한 병원에 연습공간을 마련했다.
김씨는 “아이가 오디션을 통해 선발돼 학교 전체를 대표한다 생각하고 자부심과 기대에 차 있었는데 하루 아침에 내쫓긴 기분이다”며 “포스코의 행태가 너무 실망스럽고 괘씸하다”고 말했다.
포스코는 지난해 초 12개 교육기관 중 유치원과 초ㆍ중학교 8곳을 공립으로 바꾸려다 교직원과 각 학교가 있는 지역 정치인들의 반대로 철회했다. 사외이사들이 해마다 교육재단에 지원하는 출연금 250억원을 문제 삼는다는 이유로 공립화를 추진했지만 실패, 지원을 줄이기로 했다. 포스코는 지난 9월 공시를 통해 포스코교육재단에 올해 180억원, 2020년 120억원, 2021년 70억원을 출연한다고 밝혔다.
포스코교육재단은 포스코의 이 같은 결정에 인력 구조조정과 학교통합, 교사 수당 감축 등에 나섰다. 재단은 영어 원어민 교사를 없애고 운동부를 폐지하기로 했다. 또 자율형사립고인 포항제철고, 광양제철고 등록금을 인상하기로 했다.
교직원과 학부모도 반발하고 있다. 재단은 지난달 21, 22일 각각 포항과 전남 광양에서 교직원을 상대로 간담회를 가졌으나 항의만 받았다. 교직원들은 “세계적 기업인 포스코가 미래 인재 양성에 더 투자하지 못할망정 출연금을 대폭 삭감한다는 것이 이해가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포항제철초 학부모 김모(45)씨는 “공립화 추진 때도 학부모들에게 단 한마디 말도 없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더니 이번에도 지원축소 이유와 대책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다”며 “교육을 받는 아이들만 피해를 입는 것 같아 걱정되고 화가 난다”고 말했다.
이에 포스코교육재단 관계자는 “영어는 사교육을 많이 하는데 꼭 원어민 교사를 둘 필요가 있느냐는 의견이 많아 채용하지 않기로 했다”며 “포스코가 지원 축소를 공표해 현재로선 지출을 줄여나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며 초ㆍ중학교는 2021년까지 경북, 전남교육청에서 100% 지원하기로 해 학생들에게 지장이 없도록 애쓰고 있다”고 말했다.
김정혜 기자 kj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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