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보험사들이 실적 악화를 이유로 본격적인 긴축 운영에 돌입했다. 올해 하반기 들어 상품의 보장 내역을 축소하고 마케팅 규모를 줄이는 한편 보험금 지급 및 가입자 심사를 강화하는 양상이다. 손보사 입장에서는 자동차보험과 실손의료보험을 중심으로 한 손해율 상승과 실적 악화에 대응해 자구 노력에 나선 것이지만, 결국 가입자 혜택이 줄어들면서 보험 수요 또한 위축되는 자충수가 될 거란 지적도 나온다.

10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메리츠화재가 지난 10월 자사 상품의 유사암 진단비를 2,000만원대로 내린 데 이어 이달 재차 1,000만원으로 축소했다. KB손해보험, DB손해보험, 현대해상 등 다른 손보사들도 비슷한 수준으로 보장금액을 내리겠다고 예고한 상황이다.

손보사들은 나아가 고객의 합산 유사암 진단비 한도를 1,000만~3,000만원 수준으로 줄일 것으로 알려졌다. 고객이 자사의 유사암 보장 상품에 가입하려 할 때 다른 회사에서도 관련 상품에 가입했는지를 따져 진단비 합산액이 한도를 넘으면 가입을 거부하려는 것이다. 소비자 입장에선 여러 보험상품에 가입하는 방식으로 유사암 발병에 충분히 대비하기가 어려워지는 셈이다.

유사암은 갑상선암과 경계성 종양 등 일반암에 비해 발병률은 높고 치료비는 적은 암을 가리킨다. 올해 상반기만 해도 장기보험 판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최대 5,000만원까지 보장되는 상품이 나오기도 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필요한 비용에 비해 보장금액이 지나치게 높아진 측면이 있어, 지금의 보장 축소 움직임은 자연스러운 조정 현상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하반기 들어 장기보험 부문의 손실이 급증하면서 경쟁이 잦아들었다고 해석하고 있다. 손보사들은 올해 이 부문에서 약 3조3,000억원의 영업손실을 봤고 회사에 따라 손해율이 90%를 넘어서는 경우도 나타났다. 손해율 상승의 주요인으로는 상반기 기준 손해율이 130%에 이른 실손의료보험이 지목되고 있지만, 다른 상품 역시 판매 경쟁으로 따른 사업비 지출 증가가 부담으로 작용했다.

자동차보험 역시 손실 폭이 커지면서 중소형 손보사를 중심으로 마케팅 비용 절감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일례로 롯데손해보험은 최근 자동차보험 텔레마케팅 조직 인력의 40%를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받기 시작했다. 10월 말 기준 중소형 손보사들의 자동차보험 손해율은 100%를 넘어섰고 대형 손보사들도 90%에 육박하고 있다. 보험사들은 자동차보험료를 올해 두 차례 올리긴 했지만, 그 이전까지 2년 이상 인상이 없었고 인상폭도 충분하지 않았다며 내년 초 4~5% 추가 인상을 추진하고 있다.

손해를 조금이라도 줄이려다 보니 보험금 지급 심사도 깐깐해지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집계한 올해 상반기 자동차보험의 보험금 지급 관련 민원은 2,806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5% 증가했다. 보험사 민원의 증가는 지급 심사를 그만큼 강화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가입 단계에서 보험사고가 잦을 것으로 예상되는 ‘고위험자’를 가려내는 인수(가입 허가) 심사도 최근 한층 엄격해지는 흐름도 관측된다.

보험사들은 보험사기나 과잉 지출을 줄여 전체 보험 가입자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취지라고 설명하지만, 가입자 입장에서는 보장 규모가 줄어들고 보험금을 받기 위한 절차가 까다로워지는 상황이 달가울 리 없다. 한 보험업계 영업 담당 관계자는 “보험사들이 위기 관리에 나선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지나치게 엄격한 심사는 가입을 원하는 애꿎은 고객의 발길마저 돌릴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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