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매일이 초상집” 김우중 별세에 1997년 IMF세대 기억 소환

알림

“매일이 초상집” 김우중 별세에 1997년 IMF세대 기억 소환

입력
2019.12.10 10:52
수정
2019.12.10 11:27
0 0

“아버지, 대우서 정리 해고”, “사회가 망해”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9일 별세했다. 김 전 회장이 2014년 8월 26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대우특별포럼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9일 별세했다. 김 전 회장이 2014년 8월 26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대우특별포럼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9일 향년 83세로 별세했다는 소식이 알려진 이후 1997년 외환위기를 겪었던 세대들이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 당시 힘들었던 기억을 떠올리고 있다.

김 전 회장과 대우그룹, 그리고 IMF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김 전 회장의 대우그룹은 IMF 사태 이전까지만 해도 승승장구했다. 한때 재계 서열 2위까지 도약했다. 그러나 IMF 사태로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자금난에도 무리하게 사세를 확장한 데다 IMF 사태로 급격한 유동성 위기에 빠졌다. 여기에 사상 최대 규모인 41조원대 분식회계가 드러나면서 몰락의 길을 걸었다. 뒤늦게 밝혀진 대우그룹 분식회계 규모는 1997년 19조여원, 1998년 21조여원이었다.

이러한 탓에 IMF 사태 당시 주변의 실직을 경험했던 세대들은 김 전 회장의 별세를 계기로 온라인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당시 아픔을 떠올리며 기억을 공유하고 있다.

한 누리꾼(wo****)은 10일 온라인 커뮤니티에 “IMF 사태 당시 저희 반 최소 3분의 1 정도 부모님들이 직장을 잃었었다. 그때 거의 매일 친구 아버지들이 직장을 잃는 소리가 들려 하루하루가 초상집 분위기였다”는 글을 올렸다. 이 누리꾼은 “저도 아버지 직장 잃으실지 몰라 항상 조마조마 불안해하며 살았는데 집집마다 얼마나 힘들었을지 예상도 안 된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또 다른 누리꾼(하****)은 “입대하고 한 달 뒤에 IMF가 터졌다. 자대 배치 받고 나니까 사회가 망했더라”며 “군대에 있어 실시간으로 체감은 못 했지만, 제대하고 나니 세상은 달라져 있었다”고 글을 올렸다. 이 글엔 “98년에 입대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군대에 있었던 게 행운이었을지도 모른다”(와****)는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이 외에도 “같은 반에 최소 한두 명씩은 꼭 대우에 다니던 아빠가 있어서 IMF 때 어린 나이였지만 암암리에 서로 집안 얘기를 묻지 않던 분위기였다”(68****), “(아버지는) 평생을 대우전자에서 보내시다 마지막은 정리 해고되셨다. 대우와 김우중 전 회장은 우리 가족에 큰 상처로 남았다”(침****) 등의 반응이 이어졌다.

김 전 회장은 최근까지 한국과 베트남을 오가며 젊은 사업가 양성에 힘써 왔다. 그러나 지난해 8월 말 이후 건강이 나빠져 통원치료를 하는 등 대외활동을 자제해왔다. 그러다 12월 말부터 증세가 악화해 장기 입원해 투병 생활을 해왔다. 평소 뜻에 따라 연명치료는 받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윤한슬 기자 1seul@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