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그리고 김우중의 한탄 “대우 몰락은 정치적 판단 오류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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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그리고 김우중의 한탄 “대우 몰락은 정치적 판단 오류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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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0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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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 사태'가 발생한 1999년 10월 중국으로 출국했다가 종적을 감춘 뒤 해외에 체류했던 김우중 전 대우 회장이 2005년 6월 14일 하노이발 아시아나항공 OZ734편으로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 배포한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사죄의 글'. 연합뉴스

승승장구하던 김우중과 대우그룹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로 급격히 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세계 경영’ 선두에 섰던 만큼 다른 어떤 그룹사보다 타격이 클 수밖에 없었다. 수출을 하기 위해 수입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는 원 달러 환율이 두 배 가까이 오르면서 타격을 피할 수가 없었다. 급한 대로 대우는 차입 경영에 의존했지만 이 역시 금리가 30% 이상 뛰자 속수무책으로 유동성 위기에 몰릴 수밖에 없었다.

당시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이던 김 전 회장은 1998년 초 당시 김대중 대통령당선자에게 외환위기 극복을 위한 해법으로 ‘500억 달러 무역 흑자론’을 내걸었다. 수출을 확대해 외화를 벌어들여 외환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주장이었지만 ‘한국 기업의 부채를 줄여야 한다는 국제금융기구(IMF)의 가이드라인을 고집하던 경제관료들에게는 설득력이 없었다.

김 전 회장은 여러 차례 “내가 전경련 회장을 맡지 않았더라면 경제관료들과 갈등을 빚지 않았을 것이고, 그렇다면 대우 해체로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직원들에게 말해왔다고 한다. 김대중정부 경제관료들과의 갈등이 해체로 이어졌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 같은 주장은 2014년 8월 대우그룹 해체 15주년을 맞아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교수가 집필한 대화록 ‘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책에는 대우그룹 해체가 경제관료의 정치적 판단 오류 때문이라는 ‘기획 해체론’이 담겨 있다. 하지만 김 전 회장과 대우그룹의 차입을 통한 과잉투자가 그룹 해체의 주된 이유라는 시각도 팽팽하다.

김 전 회장은 1999년 10월, 중국 엔타이 열린 자동차부품공장 준공식에 참석한 뒤 종적을 감췄다. 외환위기에 대한 대우 책임론이 거세지고 검찰이 수사에 나설 기미가 보이자 잠적한 것이다.

5년8개월 간의 해외 도피생활을 하던 김 전 회장은 2005년 6월 입국해 검찰 조사를 받았다. 2006년 분식회계 및 사기대출, 횡령 및 국외 재산도피 등의 혐의로 징역 8년6개월, 추징금 17조9,253억원이 확정됐고, 2008년 1월 대통령 특사로 사면 받았다.

김 전 회장은 그룹 해체 후에도 자신이 적극적으로 시장을 개척한 베트남에 머물며 인재양성 사업을 펼쳐왔다. 김 전 회장이 마지막으로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지난해 3월 대우 창업 51주년 기념행사 때였다. 대우그룹 임직원들은 1999년 그룹 해체 이후에도 매년 창업기념행사를 진행해왔다.

하지만 김 전 회장은 마지막까지도 천문학적인 추징금과 세금에 대해선 미납한 채로 생을 마감하면서 불명예스러운 자취도 남겼다. 김 전 회장에겐 여전히 18조원에 달하는 추징금이 미납 상태로 남아 있다. 김 전 회장은 또 지방세 역시 내지 않았다. 서울시에 따르면 김 전 회장은 지난해와 비슷한 35억1,000만원을 내지 않아 2년 연속 고액 상습 체납자 리스트에 올랐다. 김 전 회장은 국세청과 소송을 벌이다가 2017년 대법원에서 패소, 지난해부터 명단에 포함됐다.

남상욱 기자 thot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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