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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생태II] 서해 건너는 수많은 철새들 “소청도 휴게소엔 꼭 들러요”

입력
2019.12.14 04:4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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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까지 이동하는 비둘기조롱이. 국립생물자원관
아프리카까지 이동하는 비둘기조롱이. 국립생물자원관

우리는 철새를 보며 계절의 변화를 느낄 때가 많습니다. 오래전부터 우리의 선조는 종다리가 하천변에서 울고 제비가 처마 밑에 둥지 짓는 모습을 보며 봄을 느끼고, 달밤에 날아가는 기러기를 보며 가을을 지나 겨울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철새가 계절 변화에 따라 규칙적으로 이동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친근한 철새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게 된 것은 최근의 일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철새 이동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불과 20여 년 밖에 되지 않습니다. 철새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선진국에 비해 많이 부족한 편이지만, 최근 철새가 많이 찾는 소청도에 철새 이동 연구를 집중적으로 하기 위해 국립생물자원관에서 국가철새연구센터를 만들었습니다. 철새에 대한 장기적인 연구를 진행할 현장연구소가 만들어졌으니 앞으로 철새연구에 획기적인 진전이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그렇다면 황해도 앞, 백령도 남쪽에 위치한 작은 섬 소청도에 왜 철새센터가 만들어졌을까요?

소청도 전경. 국립생물자원관
소청도 전경. 국립생물자원관

 ◇철새의 유형 

우리나라에는 계절에 따라 다양한 철새가 찾아옵니다. 텃새는 사계절 내내 한 지역에서 살아가지만, 철새는 계절에 따라 번식지와 월동지를 이동하며 생활합니다. 한국에서 기록된 조류는 약 540여 종인데 이 중 10% 정도의 텃새를 제외한 나머지 종들은 특정 시기에만 한국을 찾는 철새입니다.

철새는 여름철새, 겨울철새, 통과철새로 나눌 수 있습니다. 여름철새는 제비처럼 봄에 한국에 도래해서 번식하고 가을이 되면 한국보다 따뜻한 남쪽 지역으로 이동해서 겨울에는 볼 수 없습니다. 겨울철새는 반대로 한국보다 북쪽 지역에서 번식하고 가을이 되면 한국에 도래해서 겨울을 보낸 후 봄이 되면 다시 번식지로 북상합니다.

기러기와 두루미는 대표적인 겨울철새입니다. 통과철새는 한국보다 북쪽의 번식지에서 여름을 보내고, 한국보다 남쪽의 월동지로 이동해서 겨울을 보냅니다. 이렇게 번식지와 월동지를 이동하며 한국에는 봄과 가을에만 잠시 머물다가 이동하는데 봄과 가을 서해안 갯벌에서 많은 수가 관찰되는 도요새와 물떼새가 대표적인 통과철새입니다. 이렇게 다양한 유형의 철새들이 한국을 찾기 때문에 우리는 계절에 따라 계속 새로운 새를 만날 수 있습니다.

서해5도 지도. 국립생물자원관
서해5도 지도. 국립생물자원관

 ◇왜 소청도에 많은 철새가 찾아올까요? 

한반도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우리나라를 찾는 철새는 대부분 바다를 건너서 이동해야 합니다. 새가 아무리 비행능력이 좋아도 이동을 위해 바다를 건너는 것은 아주 위험합니다. 바다를 건너다가 태풍과 같은 급격한 기상변화를 만나거나, 체력이 바닥나면 성공적인 이동을 못 하고 죽을 수도 있습니다. 많은 종의 새는 헤엄을 치지 못하기 때문에 바다를 건너다가 지쳤을 때 내려앉아 쉴 곳을 찾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소청도가 위치한 지역은 황해도와 산둥반도가 마주 보고 있어 철새가 서해를 최단 거리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이동의 위험과 에너지 소모를 최소화할 수 있는 셈입니다. 중요한 철새 이동 경로에 위치한 소청도는 봄과 가을에 서해를 건너 이동하는 철새를 많이 관찰할 수 있습니다. 이동하는 새가 지친 날개를 쉬고, 먹이와 물을 먹을 수 있는 휴게소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많은 철새가 찾는 곳이니 철새를 연구하기 위한 최적의 장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을에 소청도에서 대집단이 관찰되는 벌매. 국립생물자원관
가을에 소청도에서 대집단이 관찰되는 벌매. 국립생물자원관

 ◇맹금류의 천국 

소청도에서 기록된 조류는 한국에 기록된 조류 중 약 60%에 해당하는 328종입니다. 반나절 정도면 섬 전체를 둘러볼 수 있을 정도로 작은 섬에서 이렇게 많은 종이 기록되었으니 이 지역에 얼마나 많은 새가 찾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 중 대표적인 새는 다양한 맹금류입니다. 맹금류는 작은 동물을 사냥하는 매류와 수리류를 의미합니다. 벌매는 9월 중순부터 10월 초까지 소청도 상공에서 하루에 수십에서 수백 마리가 비행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이 시기에 자주 볼 수 있는 비둘기조롱이는 소청도를 거쳐서 월동지인 아프리카까지 엄청난 장거리 이동을 합니다. 비둘기 정도의 크기로 맹금류 중 작은 편에 속하는 이 종은 다른 어떤 맹금류보다 먼 거리를 이동합니다. 맑은 가을 하늘에 많은 수의 맹금류가 날갯짓도 하지 않고 선회비행을 하며 바다를 건너서 이동하는 모습은 소청도에서만 볼 수 있는 장관입니다.

올해 10월 7일에 소청도에서 발견된 한국 미기록종 검은댕기수리. 국립생물자원관
올해 10월 7일에 소청도에서 발견된 한국 미기록종 검은댕기수리. 국립생물자원관

 ◇한국 미기록종이 찾는 섬 

철새를 관찰하다가 한국에서 아직 한 번도 기록된 적 없는 새로운 종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소청도처럼 다양한 철새가 찾는 지역에선 이런 행운을 만날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올해 10월 7일 소청도에서 검은댕기수리라는 새가 국내 최초로 관찰되었습니다. 몸 윗면은 검은색이고, 아랫면에는 흰색 바탕에 검은색과 적갈색의 줄무늬가 있으며, 머리 뒷쪽의 뿔깃이 특징인 이 종은 주로 태국,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와 중국 남부에 분포합니다. 원래의 분포지역을 벗어나 왜 소청도까지 이동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길치’라서 원래 이동할 곳을 벗어났을 수도 있고, 이동 중에 기상 악화로 먼 곳까지 왔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장기적으로 기후변화에 적응하며 한반도로 분포권이 넓어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한국에 텃새화된 검은이마직박구리. 국립생물자원관
한국에 텃새화된 검은이마직박구리. 국립생물자원관

 ◇단시간에 분포를 확대한 검은이마직박구리 

2002년 서해안에 위치한 어청도라는 작은 섬에서 검은이마직박구리가 최초로 기록되었습니다. 주로 중국 남부, 대만, 일본 오키나와와 같은 따뜻한 지역에 분포하는 종인데 한반도 서해안 섬에 나타난 것입니다. 길을 잃고 우연히 한국을 찾은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2004년에 소청도에서 처음으로 번식이 확인된 것을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관찰되기 시작했습니다. 첫 발견 이후 10년도 지나지 않아 전국적으로 분포가 확산되고, 텃새화되었지요. 올가을에는 소청도에서 하루에 1,000 마리가 넘게 관찰될 정도로 흔한 새가 되었습니다. 한국에 전혀 살지 않던 종이 단시간에 전국적으로 분포하는 텃새가 된 것은 참 놀라운 변화입니다.

한국에 살지 않던 종이 꾸준히 발견되고, 그중 몇 종은 분포권이 넓어지면서 한반도에서 텃새화되는 현상이 확인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그 이유는 정확히 모르지만 이런 변화를 파악하고 원인을 찾으려면 소청도 같은 곳에서 장기적인 모니터링과 연구가 꼭 필요합니다.

텃새이지만 가을에 이동이 활발한 박새. 국립생물자원관
텃새이지만 가을에 이동이 활발한 박새. 국립생물자원관

 ◇이동하는 텃새 

텃새는 한 지역에서 사계절 살아가는 새를 의미합니다. 그렇지만 ‘텃새는 전혀 이동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한다면 착각입니다. 예를 들어 한국의 대표적인 텃새인 박새와 진박새를 보면 1년 내내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에 이동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지만 산 정상부에서 번식하는 집단은 겨울이 되면 낮은 지대로 이동하고, 북한이나 중국에서 번식하는 집단은 겨울에 한반도 남쪽 지방으로 이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뜻한 날씨와 풍부한 먹이를 찾아 가을과 겨울에 이동하는 것입니다. 올가을 소청도에는 9~10월까지 텃새인 박새와 진박새의 대이동이 있었습니다. 하루에 적게는 수백 마리에서 많게는 수천 마리가 매일 소청도를 경유해서 이동했습니다. 이 집단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우리는 아직 잘 모릅니다.

다리에 금속가락지를 부착한 진박새. 국립생물자원관
다리에 금속가락지를 부착한 진박새. 국립생물자원관

 ◇철새 이동연구 방법 

철새 이동의 신비를 풀기 위해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다양한 방법으로 연구를 해왔습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방법은 금속가락지를 새의 다리에 부착하는 방법입니다. 현재와 같은 형태의 가락지는 1890년 덴마크의 조류학자인 모르텐센이 흰점찌르레기에게 가락지를 부착한 것이 최초입니다. 가락지에는 사람의 주민등록번호 같은 일련번호와 연락처, 부착한 기관의 이름이 표기됩니다. 아주 오래전에 고안한 방법이지만 아직도 전 세계적으로 매년 수백만 마리의 조류에게 가락지를 부착하고 있습니다. 올해부터 소청도에서도 본격적으로 가락지 부착을 시작했으니 앞으로 소청도에서 쉬어간 철새의 이동 경로가 밝혀질 것입니다.

최근에는 중대형조류를 중심으로 위치 좌표를 전파로 알려주는 위치추적 발신기를 이용한 연구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한 번만 부착하면 추가로 포획하지 않아도 위치 좌표를 수신해 이동 경로를 추적할 수 있어 장점이 많지만 발신기의 무게 때문에 작은 새에게는 부착할 수 없습니다.

0국가철새연구센터 전경. 국립생물자원관
0국가철새연구센터 전경. 국립생물자원관

 ◇환경지표종 철새 연구의 필요성 

최근 철새와 서식지 보호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많은 조류가 감소하고 있고, 그들의 서식지도 함께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철새를 보호하기 위해 어느 한 국가나 한 지역만 노력한다면 철새의 이동성을 고려할 때 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한 종의 철새를 보호하려면 국경을 초월해 번식지와 중간기착지, 월동지를 전체적으로 보호해야만 합니다. 이렇게 서식지를 종합적으로 보호하려면 사계절 동안 철새가 어떻게 이동하고, 어느 지역에서 서식하는지 정확히 파악해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동 경로가 밝혀진 종은 매우 적고, 생태는 베일에 가려져 있습니다.

최근 국내에서 새로운 조류가 발견되거나 분포권의 변화가 감지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과거에 흔했던 종이 사라지거나 개체 수가 감소하여 멸종위기에 처한 경우도 있습니다. 조류는 환경의 변화를 알려주는 대표적인 지표종입니다. 우리 주변 철새에서 확인되는 변화는 환경의 변화를 알려주는 간접적인 신호입니다.

환경의 변화는 철새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큰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 삶의 터전인 환경을 잘 지키기 위해 철새에 대한 따뜻한 관심과 꾸준한 연구가 필요합니다. 이제 막 첫걸음을 뗀 소청도 국가철새연구센터가 이것을 위해 작지만 큰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박진영 국립생물자원관 국가철새연구센터 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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