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평균 3시간36분으로 줄어
“밥도 못 먹고 화장실도 못 가”
정부, 대안 없이 연장법안 반대
“고령 장애인 대책 시급” 지적
“다음 달부터 정부가 장애인 활동지원사 지원을 끊는대요. 사지 마비 장애인이라 활동지원사 없이는 밥도 못 먹고 화장실도 못 가요. 자세를 바꿔 눕지 않으면 욕창도 생기고요. 그렇다고 따로 가족을 꾸린 딸에게 돌아갈 수도 없고, 아이고 어떡해. 꼼짝없이 사형선고를 받은 기분입니다.”
2002년 교통사고를 당해 손을 제외한 전신 마비 장애를 갖게 된 이한순(64)씨. 그는 만 65세 생일(내년 1월 10일)을 한달 앞두고 ‘죽을 것만 같은 불안’에 시달린다고 털어놨다. 지난 5일 서울 광진구 자택에서 만난 이씨는 만 65세부터 정부가 지원하는 장애인 활동지원 서비스를 받을 수 없도록 하는 현행 ‘장애인활동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장애인활동지원법)’을 원망하면서 대안을 내놓지 않는 정부를 탓했다.
장애인활동지원법에 따라 이씨는 보건복지부로부터 매월 활동지원급여(장애인을 돕는 활동지원사의 근무 시간 혹은 지급받는 비용을 의미) 391시간을 제공받고, 추가로 서울시 등 자치단체로부터 220시간을 지원받아왔다. 산술적으로 이씨는 한 달 동안 총 611시간(하루 평균 19.7시간)의 활동지원을 받는 셈이다. 사지를 움직일 수 없지만 그나마 연명할 수 있도록 하는 고마운 생명줄이었다. 남편과 이혼한 이씨는 돌봐줄 가족이 전혀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65세 생일이 지나면 다음 날부터 이씨는 장애인활동법지원법 대상에서 벗어나 일반인에 적용되는 노인장기요양보험의 활동지원급여(해당 법에서는 재가급여로 표기)를 이용해야 한다. 이에 따라 이씨가 한달 동안 받을 수 있는 활동지원급여는 최대 108시간으로 줄어든다. 하루 평균 3시간 36분에 불과하다. ‘사형선고’를 떠올릴 만큼 절박해지는 이유이다. 이씨는 “제 몸은 그대로인데 지원은 왜 줄어들죠. 이유를 모르겠어요”라고 말하며 울었다.
◇“형평성에 문제” 이유로 보완 법안 반대한 복지부
고령화로 인해 65세 이상 중증장애인도 급증하고 있지만, 이 같은 활동지원 ‘사각지대’에 대한 정부의 보완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씨처럼 만 65세가 돼 활동지원 ‘절벽’ 앞에 서는 장애인들은 생존을 위해 사설 요양원에 입소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고 있다. ‘장애인 탈(脫)시설’을 주요 장애인 정책과제로 내세운 문재인 정부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국회가 나서 이씨와 같은 고령 중증장애인에 대한 현실적인 활동지원급여를 유지하는 법안을 발의했지만, 정작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의 반대에 부딪혀 무산됐다. 지난달 21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장애인이 만 65세가 되면 활동지원급여와 재가급여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자’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한 장애인활동지원에관한법 개정안 3건이 논의됐다. 그러나 복지부는 해당 법안뿐만 아니라 활동지원급여의 만 65세 연령제한을 폐지하거나 제한 연령을 높이는 방안 모두 실현이 어렵다는 입장을 내놨다. 노인이 돼서 재가급여를 받는 사람 가운데 신체기능이 떨어졌음에도 장애인으로 정부에 등록하지 않은 사람들과의 형평성이 깨져서라는 게 이유이다. 복지부는 내년 중 연구용역을 시행해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답만 내놓을 뿐이다.
장애인들은 보완 법안 무산 소식을 듣고 참담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씨는 “큰일이 났다”는 말만 반복했다. 지체장애인 이용원씨는 “대안 없이 장기요양보험 대상자가 되면 결국 남편이 사업을 접고 저를 돌봐야 할 것”이라면서 “영세공장을 열어 겨우 먹고 사는데 이대로라면 또 주저앉아야 할 판”이라고 털어놨다.
◇시급한 장애인 고령화 대책
의료기술과 복지제도 발전으로 장애인 수명이 늘어난 점을 고려하면 활동지원 절벽을 맞닥뜨리는 장애인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실제 장애인 가운데 만 65세 이상 비율은 2011년 38%에서 지난해 46%로 상승했다. 활동지원사를 장애인 가구에 보내는 광진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김현자 팀장은 “장애인 평균 수명이 과거 굉장히 짧았는데 점차 수명이 늘어나면서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라면서 “활동지원이 줄어들면 장애인들은 시설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활동지원 절벽이 발생하지 않도록 활동지원급여를 만 65세 이상에게도 유지하되 서서히 줄여나가야 한다고 지적한다. 동시에 빈약한 재가급여는 이용시간을 늘려야 한다는 설명이다.
김진우 덕성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고령 장애인은 그간 받던 혜택이 사라져 불만이 클 수밖에 없다”면서도 “단기적으로는 연착륙이 필요하다”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비장애인 노인 대상 재가급여가 열악한 상황은 결국 우리 사회가 (중증 장애인만큼 거동이 불편한) 노인은 요양원 등 시설에 입소해야 한다고 암묵적 합의를 했기 때문에 빚어졌다”라면서 “고령 장애인과 노인의 사회활동, 지역사회에서의 생활을 얼마나 보장할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김민호 기자 kmh@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