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조선인들이 강제 동원돼 일본군 총칼을 만들어야 했던 ‘일본육군조병창(이하 조병창)’의 흔적이 9일 추가로 공개됐다. 한국일보 ‘뷰엔(View&)’ 팀이 지난달 국내 언론 최초로 인천 부평구 ‘캠프 마켓’ 내부에 방치된 조병창 시설을 보도한 지 약 열흘 만이다. 뷰엔 보도(11월 28일자 15면) 직전까지 기지 내 시설물에 대한 공개를 극도로 꺼리던 주한미군이 언론의 취재를 허가하면서 앞으로 강제 징용의 역사적 흔적에 대한 연구가 본격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뷰엔 기사보기 : ‘미군기지에 갇혀 74년째... 잊히는 강제징용의 역사’)
9일 공개된 사진을 통해 본 캠프 마켓 내부에는 이미 한국일보가 보도한 주물공장과 초대형 굴뚝을 비롯해 일본식 석등과 일본 제국주의의 문양이 새겨진 기와 등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건물 내부 벽에는 미군의 시멘트가 닳아 없어지면서 일제 강점기 쌓은 빨간 벽돌이 드러나 있는데, 당시 일제는 부평 인근에서 제작한 빨간 벽돌을 건축에 주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초대형 굴뚝이 인상적인 주물공장 건물 내부에서는 화로의 흔적이 여러 군데 확인되기도 했다.
조병창은 중일 전쟁이 한창이던 1941년 일제가 인천 부평구 일대 100만여평 부지에 지은 무기 제조 공장이다. 당시 일본 본토 외 지역으로는 유일한 무기 제조 공장이었다. 광복을 맞기 전까지 이곳에 강제 동원된 조선인만 1만명에 이르렀고 12, 13세의 어린 학생도 적지 않았을 만큼 일제의 수탈이 극에 달했던 곳이다.
광복 직후 미군은 ‘일본육군조병창’ 부지를 접수해 군수지원사령부(애스컴시티)로 사용하다 1973년 기지 대부분을 우리 정부에 반환했고, 부지가 개발되면서 조병창의 흔적은 대부분 사라지고 말았다. 유일하게 존속된 ‘캠프 마켓’에만 조병창의 일부로 쓰인 건물 34개 동이 아직 남아 있지만 74년째 우리 국민과 격리된 채 발굴 조사 한 번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김주영 기자 wil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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