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공공장소 남녀 분리 규정 폐지
8일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사우디아라비아와 바레인 간 제24회 걸프컵 결승 경기가 열리고 있는 압둘라 빈 칼리파 경기장에서 두 여성 축구팬이 사우디 국기를 들고 사우디 팀을 응원하고 있다. 도하=EPA 연합뉴스

이슬람권 국가 중에서도 가장 보수적 왕정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공공장소 남녀 부동석(不同席)’ 금기가 깨졌다. 사우디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사회 전반에 걸쳐 추진중인 대대적인 개혁의 바람 속에서 가장 보편적인 규율 중 하나였던 남녀 분리의 원칙이 허물어지고 있는 것이다.

사우디 지방행정부는 8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주요 공공장소에서 남녀의 자리와 입구를 분리하도록 한 규정을 폐지한다”고 밝혔다고 AP통신 등 외신들이 보도했다. 이슬람 율법상 남녀 분리 원칙 자체를 폐기한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의무적이었던 공공장소에서의 자리 분리 규정은 없앤 것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는 식당과 카페는 물론 학교, 상점, 스포츠센터 등에서 사우디 남녀가 동석하더라도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게 됐다.

지금까지 사우디의 식당과 카페 등은 여성들만 사용할 수 있는 별도의 입구를 따로 두고 있었다. 가게 내부 역시 남성들만 앉을 수 있는 독신자(single)석과 여성들끼리 온 손님이나 남성 친척이 섞여 있는 손님들이 사용할 수 있는 가족(family)석이 분리돼 운영됐다. 가족이 아닌 남녀가 같은 자리에 앉을 수 없게 한 것이다.

여성은 독신 남성이 볼 수 없도록 격벽이 설치된 별도 공간에 마련된 자리에 앉아야 했다. 분리된 공간이 없다면 해당 가게에 들어갈 수 조차 없는 것은 스타벅스나 맥도널드 등 서구권에서 들어온 체인점도 예외가 아니었다. 지난해 9월 사우디의 한 호텔에서 일하는 외국인 남성이 여성 사우디인 동료와 함께 식사를 한 동영상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렸다가 체포된 사례도 있다.

여성 권익 향상 흐름에서 가장 뒤쳐져온 사우디는 빈 살만 왕세자 주도로 최근에야 여성들의 사회 참여 환경 개선에 공을 들이고 있다. 지난해 여성 운전과 축구장 입장을 허용했고, 올해 8월엔 여성이 해외여행과 취업, 결혼 등을 할 때 남성 보호자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마흐람(후견인) 제도도 상당 부분 완화했다. 10월 수도 리야드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여자 프로레슬링 경기를 허용하는 파격도 선보였다.

이는 해외투자 유치를 위해 국제적 상식과 동떨어지지 않은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사우디 왕정의 판단에 따른 조치라고 외신들은 분석했다. 일각에선 지난해 발생한 사우디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피살 사건’으로 부각된 ‘야만 국가’ 이미지를 벗기 위한 제스처라는 분석도 나온다.

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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