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 총학 재투표는 14년 만 
지난 8월 서울 고려대 안암캠퍼스 중앙광장에서 학생들이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딸의 고려대 부정입학 의혹 관련 집회를 하고 있다. 류효진 기자

고려대 총학생회 선거가 저조한 투표율로 투표 성립요건을 달성하지 못하고 무산됐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딸의 부정입학 의혹이 불거진 이후 총학생회의 리더십에 의문을 보였던 학생들이 대거 투표를 하지 않은 결과로 해석된다.

9일 고려대에 따르면 지난 4~6일 진행된 52대 서울총학생회장단 선거 투표율이 22.8%에 그쳐 투표 성립요건인 33.3%를 달성하지 못했다.

선거시행세칙(제65조)에 근거해 투표율이 3분의 1을 넘지 않으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투표 기간을 2일 연장할 수 있지만 선관위는 투표 연장 대신 재투표를 결정했다.

고려대 선관위 관계자는 “올해 투표율 추이로 봐서는 이틀간 연장해도 개표 기준 투표율을 넘지 못할 것 같아 재투표하기로 했다”며 “그전까지는 비상대책위 체제로 운영된다”고 말했다.

고려대는 내년 3월 재선거를 통해 총학생회를 선출할 예정이다. 해를 넘겨 재선거가 치러지는 것은 2005년도 총학생회 선거 이후 14년 만이다. 당시 개표 기준 투표율은 현행 33%보다 높은 50%였다. 최근 총학생회 선거 투표율이 30~40%였던 것을 감안하면 올해 투표율은 이례적으로 낮다. 지난해 51대 총학생회 선거 투표율도 36.4%였다.

학생들은 총학생회에 대한 실망감이 선거에 영향을 미쳤다고 지적한다. 이번 총학생회 선거에 나온 두 후보 선거운동본부에는 모두 전임 총학생회 관계자들이 포함돼 있다.

조 전 장관 딸 부정입학 의혹으로 올해 여름과 가을 교내에서 수 차례 촛불집회가 열릴 당시 총학생회는 학생들의 여론을 제대로 수용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조 전 장관 딸이 고려대에 입학하면서 1저자로 이름을 올려 논란이 된 단국대 의학논문을 제출한 게 알려지자 학생들은 ‘입학 취소’를 주장했다. 이런 상황에서 총학생회가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아 결국 일반 학생 주도로 촛불집회가 열렸고 학생들은 ‘총학 사퇴’를 주장하기도 했다.

고려대 한 학생은 “조국 사태 당시 총학이 한 게 뭐가 있나. ‘그 나물에 그 밥’이란 생각에 투표를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고려대 온라인 커뮤니티 ‘고파스’나 ‘에브리타임’에서는 선거 전부터 투표를 보이콧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이번 총학생회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의 자질 문제도 거론된다. 총학생회 정ㆍ부회장 선거에 나온 A 선거운동본부는 지난달 28일 후보자 공청회 당시 배포한 정책자료집에 표절이 있다는 의혹을 받았다. 올해 연세대 총학생회의 정책자료집과 2015년도 말 치러진 고려대 총학생회 선거에서 당선된 선본의 정책자료집에 비슷한 표현과 공약이 있다는 의혹이었다. 이에 선관위는 A 선본에 ‘경고’ 처분을 내렸고 선본 측은 표절 사실을 시인하고 사과문을 냈다.

학생회 자체에 관심이 적은 분위기도 저조한 투표율과 무관하지 않다. 연세대 역시 2017~2018학년도 선거에서 투표율이 낮아 총학생회 구성 자체를 못하기도 했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과거 거대 담론을 주장했던 시기와 달리 이제는 사안이 개별화되면서 총학생회의 의미가 점점 사라지는 상황”이라며 “취업난, 학생복지 등 실생활에 밀접한 개별 문제에 접근하는 새로운 학생 조직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안하늘 기자 ahn70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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