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산 소월리 유적서 신라 토지ㆍ조세 현황 새겨진 목간 나와
6세기 신라인이 토지 관리와 조세 제도 양상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되는 목간(문자를 기록한 나무조각)이 경북 경산 소월리 유적에서 출토됐다.
문화재청 허가를 받아 경산 소월리 유적을 발굴 조사 중인 화랑문화재연구원은 신라 시대 토지와 행정에 관련된 목간이 확인됐다고 9일 밝혔다. 목간은 종이가 없던 시절 대신 쓰이던 도구로, 국내에서 발굴된 목간 중에선 신라 시대 것들이 많다.
길이 74.2㎝에 달하는 소월리 목간은 최근 공개된 사람 얼굴 모양 토기(본보 12월3일자 28면) 아래에서 출토됐다. 얇은 붓에 먹을 칠해 글자를 적은 것으로 보인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 지난 6일 진행한 1차 판독에 따르면 목간에는 총 6면에 걸쳐 글자 94자가 새겨졌다. 글자의 서체나 내용으로 볼 때 경산 인근 지역의 토지 현황을 기록한 목간일 가능성이 크다. 6면 중 2면은 동일한 글자가 반복적으로 나타나 글씨를 연습한 용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목간 A면에는 ‘십부감말곡답칠(?)□제상일결 구미곡삼결 제하십부(卌負甘末谷畓七(?)□堤上一結 仇彌谷三結 堤下卌負)’라는 글자가 써 있다. 연구소는 A면에 쓰인 글자 중에서도 곡(谷)과 제(堤), 결(結), 부(負) 등의 글자에 주목하고 있다.
우선 목간의 제작 시기를 이들 글자에서 유추해볼 수 있다. 주보돈 경북대 명예교수는 “둑(堤)을 만들기 시작했던 시기와 논을 표현하는 고유 표현인 답(畓)이란 글자가 처음 사용된 시기는 모두 6세기”라며 “이를 통해 해당 목간 역시 6세기 중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지방 촌락의 입지와 조세 방식도 알 수 있다. 전경호 경주문화재연구소 학예사는 “곡(谷)은 특정 지역 내 작은 집단이나 마을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당시 나라에서 둑을 지어주고 주변에 논, 저수지를 조성한 뒤 여기서 나는 곡물 등에 대해 세금을 부과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연구소는 특히 소월리 목간 발굴로 ‘결부제’의 시점을 앞당겨 볼 수 있다고도 강조했다. 결(結), 부(負)는 조세를 위한 토지단위로, 그간 신라가 삼국을 통일할 무렵인 7세기에 사용된 단위로 전해진다. 목간이 6세기 것으로 판명되면 결부제 시행 시기가 100년 정도 앞당겨질 수 있다는 얘기다.
현재 목간은 1차 판독이 완료된 상황으로, 문화재청은 관련학계와 함께 추가적인 판독 및 연구 과정을 거쳐 목간에 대해 더 다양한 해석과 내용을 공개할 계획이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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