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에 맞서는 유럽 도시들] <상> 프랑크푸르트ㆍ프라이부르크의 친환경 건물 상>
<상> 친환경 건물이 도시를 살린다: 프랑크푸르트와 프라이부르크 상>
“프랑크푸르트시 외곽에는 유럽 최초의 패시브하우스 병원이 곧 문을 열 예정입니다. 670여개의 침상이 있고 연간 3만5,000명의 환자를 수용할 수 있는데 (패시브하우스 규정에 맞게 외부 전기의 사용을 최소화하면서) 각 병실을 최적의 온도로 유지할 수 있도록 한 혁신적인 프로젝트입니다.”
지난달 13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시 뢰머광장에서 만난 우르술라 쇤베르크씨는 내년 완공 예정인 프랑크푸르트 회흐스트 종합병원의 사진을 보여주며 시의 환경 정책이 얼마나 진취적인지 설명했다. 시의 환경 정책 홍보를 맡고 있는 쇤베르크씨는 “(패시브하우스는 흔히 주거용으로 짓는데) 프랑크푸르트시는 패시브하우스로 건축하기엔 어려움이 많은 대규모 건물까지도 지으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에너지 소비량 90%까지 줄이는 패시브하우스
독일에서 처음 시작해 전 세계로 퍼진 패시브하우스(Passive House)는 외부 전기의 사용을 최소화하면서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태양열과 거주자 체온 등 건물 내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열에너지를 이용해 난방을 하는 친환경 건물을 뜻한다. 연간 소요되는 냉ㆍ난방에너지가 건물 ㎡당 15㎾h(킬로와트시)를 넘어선 안 되고 냉ㆍ난방을 포함한 온수, 조명 등 1차 에너지의 연간 소비량이 ㎡당 120㎾h 미만이어야 하는 등 몇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독일 패시브하우스로 인증을 받을 수 있다.
패시브하우스라고 외부 에너지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날 쇤베르크씨와 함께 방문한 카리타스 천주교 복지재단도 5층 건물 내부 난방을 모두 지열로 해결한다. 이 건물 엔지니어 슈프론델씨는 “지하 100m 아래 물을 끌어올려 겨울에는 난방을, 여름에는 냉방을 한다”며 “내부 공기를 외부로 내보낼 때 그 공기의 열을 90% 재활용해 외부에서 들어오는 공기를 덥히는 방식으로 환기를 하기 때문에 문을 열지 않아도 신선한 공기 속에서 생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1990년 프랑크푸르트 인근 다름슈타트시에 처음 지어진 패시브하우스는 프랑크푸르트시 의회가 제정한 법에 따라 2007년부터 시 소유 토지에 짓는 신축 건물과 시 소유 건물 재건축의 의무사항이 됐다. 패시브하우스로 지을 경우 일반 주택보다 비용이 8~15%가량 더 소요되지만, 에너지 소비량이 10~20% 수준으로 줄어들기 때문에 장기적 관점에선 이득이다. 현재 프랑크푸르트시에만 2,500가구 이상이 패시브하우스에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싼 전기요금, 태양광 패널 사용 늘려
패시브하우스를 비롯해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 전기 요금 인상 등 다양한 에너지 소비ㆍ온실가스 배출 감축 정책에 힘입어 독일의 2017년 전기 소비량은 1990년 대비 10.6% 늘어나는 데 그쳤고, 온실가스 배출량은 27.7% 줄었다. 같은 기간 전기 소비량은 5.8배, 온실가스 배출량은 2.4배로 늘어난 우리나라와 대조적인 결과다.
전기 소비를 억제한 주요 정책 중 하나는 전기요금 인상이다. 현재 유럽 내 최고 수준인 독일의 전기요금은 지난 21년 사이 76.6% 올랐다. 전기 원료값과 발전ㆍ송전에 드는 비용은 9% 오른 데 그친 반면 세금과 환경부담금 등이 4배 가까이 뛴 결과다. 프랑크푸르트에서 25년째 거주 중인 김영주씨는 “독일인들은 겨울에도 난방을 잘 하지 않을 정도로 전기 절약이 생활화돼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방문한 독일의 공공건물들에선 잔뜩 흐린 날씨에 실내가 어두운데도 조명을 켜지 않는 경우가 많았고 섭씨 5도 안팎의 추운 날씨에도 난방을 약하게 해 따뜻한 기운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독일의 많은 건물주는 태양광 패널 등으로 필요한 전기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생산하는 에너지플러스 하우스나 패시브하우스, 에너지 절약형 건축을 선택하는 데는 이처럼 값비싼 전기요금도 한몫했다. 지난달 14일 독일 프라이부르크시에서 만난 크리스토프 팀페 에코연구소 에너지기후국장은 “태양광 패널을 많이 설치하는 건 태양광으로 전기를 생산하는 비용이 전력회사에서 사오는 것보다 훨씬 싸기 때문”이라며 “전력회사 등 외부와 전력망이 잘 연결돼 있어 쓰고 남은 전기를 팔기도 쉽다”고 말했다.
◇태양광 패널로 돈 벌고 환경도 지켜
인구 22만명 가운데 대학생이 3만여명에 이르는 대학도시 프라이부르크는 시민들이 44년 전 똘똘 뭉쳐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무산시켰을 정도로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 ‘독일의 환경수도’로 불린다. 독일은 물론 유럽 내 어떤 도시보다 태양광 패널을 많이 설치해 ‘태양의 도시’라는 별명도 붙었다. 실제로 지난달 15일 찾은 프라이부르크시의 대다수 건물 지붕이나 외벽에는 태양광 패널이 설치돼 있어 인상적이었다. 이날 만난 아스트리드 마이어 프라이부르크 미래연구소장은 자신이 거주하는 집을 보여주며 “태양광 패널이 설치된 덕에 전기요금을 거의 내지 않는다”며 “옆집 주인은 태양광 패널로 생산해 남은 전기를 팔아 연간 4,000유로(약 530만원)의 수입을 올린다”고 말했다.
2차 세계대전 후 프랑스군이 주둔했던 프라이부르크시 보방 지구는‘유럽에서 가장 친환경적인 지구’로 꼽힌다. 주택들이 모두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한 건물로 지어졌고, 필요한 전기와 열은 대부분 태양광 패널과 바이오가스 등 재생에너지로 충당한다. 차가 다닐 수 없어 주민들은 대체로 자전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마이어 소장은 “프라이부르크는 이미 2012년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대비 30%나 줄였다”고 말했다.
정부의 노력은 물론 시민들을 중심으로 한 태양광 전기 사용이 크게 늘면서 독일의 태양광 발전 용량은 2007년 4.2GW(기가와트)에서 올해 47.9GW로 12년 사이 10배 이상 늘었다. 국내 원자력발전소 총 발전용량인 22.5GW의 2배가 넘는다. 그 결과 지난해 독일의 전체 전력 생산 중 재생에너지 비중은 40.4%(독일 프라운호퍼 태양에너지시스템 연구소 발표 기준)를 기록했다. 독일 정부는 2022년까지 원자력발전을 모두 중단하고, 석탄화력발전소도 2038년까지 모두 폐쇄한다는 방침이다. 마이어 소장은 “당장 원전 발전 비용이 재생에너지보다 더 적을 수도 있지만 방사능 폐기물은 다음 세대에게 큰 부담이 되므로 원전이 결코 저렴하다고 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프랑크푸르트ㆍ프라이부르크(독일)=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기후위기는 일부 국가나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전 지구가 함께 겪고 있는 심각하고 시급한 사안이 됐습니다. 우리나라도 각종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온실가스 배출량은 매년 역대 최고를 경신하고 있습니다. 친환경 건물로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교통 체계를 바꿔 온실가스 배출을 감축하는 등 강도 높은 정책과 시민 참여 유도로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있는 독일과 벨기에 주요 도시의 사례를 2회에 걸쳐 살펴봅니다. 이 취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주관 'KPF디플로마 환경저널리즘 교육과정' 지원을 받아 이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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