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핵화 협상 연말 중대 기로]
北이 ‘ICBM 발사’ 레드라인 넘으면 ‘재선 훼방’ 응징 예고
北 “비핵화 협상테이블서 내려져, 대선 위한 시간벌기 속임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7일 플로리다주로 이동하기 위해 워싱턴 엔드루스 공군 기지에서 전용기 에어포스원에 탑승하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북미 비핵화 협상이 연말을 기점으로 중대 기로에 접어드는 가운데 북미 양국이 ‘미국 대선’ 변수를 두고 충돌하고 있다. 북한은 미국이 대선을 의식해 협상의 진전 대신 상황 관리만 한다며 불만을 쏟아내고, 미국은 북한이 대선 성과가 필요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양보를 받아내려고 압박을 강화한다고 판단해 경고 수위를 높이고 있다. “미국 대선을 이용하지 말라”는 같은 경고음이지만, 양국의 셈법은 전혀 달라 설전이 거칠어지고 있다.

김성 유엔주재 북한대사는 7일(현지시간) 일부 외신에 보낸 성명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대북 정책을 비판하면서 “미국이 추구하는 지속적이고 상당한 대화는 국내 정치적 어젠다로서 북미 대화를 편의주의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시간벌기 속임수”라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과 긴 대화를 가질 필요가 없다”면서 “비핵화는 협상 테이블에서 이미 내려졌다”고 강조했다.

미국은 지난 10월 초 결렬된 스톡홀름 실무협상 때부터 지속적이고 밀도 있는 실무협상을 강조하고 있지만, 북한은 이를 북핵 문제의 타협을 피하려는 시간끌기로 간주하고 있다. 여기엔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핵실험 및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중단을 대선용 업적으로 과시하면서 정작 북한에는 아무런 양보도 하지 않는다는 불만이 깔려 있다. 북한은 지난달부터 “미국 대통령에게 자랑할 거리를 주지 않을 것”, “미국 대통령이 말끝마다 자랑해온 치적에 대해 조목조목 해당하는 값을 받을 것” 등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행보를 겨냥한 불만을 연이어 표출해왔다.

하지만 미국이 북한의 압박을 보는 시각은 전혀 다르다.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는 내놓지 않은 채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행보에 어깃장을 놓아 제재 완화 등의 양보를 받아내려는 술책으로 보는 것이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위협을 ‘대선 개입’으로까지 규정해 경고 수위를 높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8일 트위터에 글을 올려 “김정은은 너무 똑똑하다”면서 “적대적으로 행동한다면 사실상 모두인 많은 것을 잃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는 싱가포르에서 나와 강력한 비핵화 협정에 서명했다. 그는 미국 대통령과의 특별한 관계를 무효화하거나 11월 미국 대선을 방해하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김 위원장의 지도 아래 북한은 엄청난 경제적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기존 입장을 재확인 했다. 앞서 7일 김 대사의 발언이 알려진 후 기자들과 만나 “김 위원장이 선거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것을 되풀이하면서 동시에 북한이 ICBM 발사 등으로 ‘레드라인’을 넘으면 자신의 재선을 훼방놓는 것으로 간주해 강력 대응을 예고한 셈이다. 아울러 북한 도발시 미국이 심각한 문제로 간주하는 ‘적대국의 미국 선거 개입’으로 선수를 쳐 민주당의 대북 외교 실패론을 차단하려는 효과도 노린 것으로 보인다.

북미 간 셈법 차이는 미 대선으로 인해 미국의 ‘비핵화 빅딜’ 방침과 북한의 ‘단계적 접근’ 간 차이가 더 크게 벌어지는 데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미국으로선 대선 기간 중 북한과의 애매한 타협은 안 하는 것만 못해 상황 관리에 치중할 수 밖에 없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탄핵 조사로 정치적 입지가 축소돼 북한에 대한 양보가 더욱 어려워졌다는 게 워싱턴 외교가의 중론이다.

하지만 이는 북한이 예전처럼 도발의 레버리지를 키우는 벼랑 끝 전술을 택하게 만들 수도 있다. 해리 카지아니스 미 국익연구센터 한국담당국장은 최근 폭스뉴스 기고문에서 “북한이 트럼프 정부를 밀어붙이기 위해 도박을 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미국의 정치적 상황을 간과하고 있다”면서 “북한이 도발할 경우 2017년의 화염과 분노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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