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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직권남용죄 수사 3배 폭증… 文정권, 부메랑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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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직권남용죄 수사 3배 폭증… 文정권, 부메랑 맞다

입력
2019.12.09 04:40
수정
2019.12.09 08:14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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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정부 적폐 수사 때 적극 활용, 이젠 文정권 찌르는 칼로 

 조국ㆍ임종석ㆍ백원우 등 고발당해… 기소율은 0.3% 불과 

4일 청와대에서 고민정 대변인이 김기현 전 울산시장 비리 의혹 제보 경위 및 문건 이첩 사건에 관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4일 청와대에서 고민정 대변인이 김기현 전 울산시장 비리 의혹 제보 경위 및 문건 이첩 사건에 관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형법 123조의 직권남용죄는 박근혜 정부의 적폐를 일소하는 데 전가의 보도처럼 활용됐다. 국정농단 사건에서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부 장관이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비롯한 사법농단 사건의 핵심 피의자들 또한 같은 죄명으로 법정에 섰다. 문재인 정부 안정화에 일등공신으로 등장했던 직권남용죄가 이제 정권 핵심을 찌르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저작권 한국일보]수정_검찰 직권남용 사건-송정근 기자/2019-12-08(한국일보)
[저작권 한국일보]수정_검찰 직권남용 사건-송정근 기자/2019-12-08(한국일보)

8일 법조계에 따르면, 최근 검찰 수사와 관련해 다수의 정권 핵심인사들이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된 상태다. 청와대 특감반원으로 활동했던 김태우 전 검찰 수사관의 민간인 사찰 폭로 이후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됐으며,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의 비리 의혹 사건이 터지면서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과 박형철 반부패비서관 등이 같은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최근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사건과 관련한 검찰 수사에서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황운하 대전경찰청장 등이 직권남용죄로 고발돼 수사선상에 올랐다.

적폐청산에서 전가의 보도였던 직권남용죄가 도리어 정권을 찌르는 부메랑이 된 건 ‘직권남용의 죄를 남용’했기 때문이라는 게 법조계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검사장 출신 한 변호사는 “고위공직자의 비리를 처벌할 때 과거 검찰이 까다로운 입증 책임에도 불구하고 횡령이나 뇌물 등 확실한 범죄 혐의를 적용했다면 최근에는 직권남용죄를 ‘조자룡 헌 칼’ 쓰듯이 남발하고 있다”면서 “이전 정부를 직권남용의 죄로 단죄할 때부터 부메랑은 예견됐던 일”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이번 정부 들어 직권남용죄를 적용하는 수사는 급증하는 추세다. 한국일보가 입수한 대검찰청 ‘검사 수사범죄 사건’ 통계에 따르면, 검찰이 직권남용죄를 적용한 경우가 박근혜 정부 말기인 2016년 4,668명이었지만 이번 정부 첫 해인 2017년 8,908명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지난해에는 1만3,503명으로 2014년(4,501명)에 비해 3배 가까이 수사 대상자가 급증했다. 올해 역시 6월까지 진행된 직권남용 수사 대상자는 6,423명으로 반기 집계로 볼 때 지난 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대검 관계자는 “직권남용죄에 대한 고소고발 사건이 급증하면서 처리 건수도 늘었다”며 검찰이 직권남용죄를 남발하는 것은 아니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검찰이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하는 비율이 극히 낮다는 점도 고소고발의 남발을 반증하는 사례로 거론된다. 지난해 직권남용 수사 대상자 1만3,503명 가운데 약식 기소되거나 실제 재판에 넘겨진 인원은 53명에 불과했다. 전체 수사 대상자의 0.3%만 기소될 정도로 직권남용으로 처벌해 달라는 고소고발이 넘치고 있다는 것이다.

검찰 주장대로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하는 고소고발 사건이 급증하는 추세를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한 고소고발의 급증 또한 적폐청산 과정의 후유증일 수 있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과거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한 법조인은 “국정농단이나 사법농단 사건에서 직권남용죄의 강력한 효과를 목격했던 공직사회가 경쟁자를 견제하고 흠집내기 위한 단순한 목적을 위해서도 직권남용을 걸어 고소고발하는 경우가 크게 늘었다”고 전했다. 재경지법의 한 형사부 판사는 “’이번 정부가 대대적인 직권남용죄 수사를 독려하지 않았나. 일단 직권남용으로 고발부터 하고 봤다’는 진술이 쏟아지고 있다”고 최근 관련 재판 경험을 소개했다.

이런 점에 비춰볼 때 직권남용 수사는 엄격하게 제한돼야 한다는 게 법조계의 한결 같은 주장이다. 고등법원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공관병 갑질 의혹’을 받던 박찬주 전 육군대장이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되지 않았던 점을 예로 들면서 “관련 법률이 적어도 정치적으로 악용되는 경우는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법 규정에도 직권남용죄에 대한 처벌대상은 ‘형식ㆍ외형적으로는 직무집행으로 보이나 실질적으로는 정당한 권한행사 외의 행위를 하는 경우’로 엄격히 제한돼 있다.

정재호 기자 next8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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